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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향기」(김성우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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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향기」(김성우 문화칼럼)

입력
1993.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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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나온 책 한권을 읽는다.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열규교수의 「빈손으로 돌아와도 좋다」라는 귀향기다. 91년봄 회갑을 한해 앞두고 40여년간 살았던 서울과 30여년간 몸담았던 대학을 홀연히 떠나 어릴때 자란 고향땅에 정착한뒤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편지 쓰듯 쓴 글들의 모음이다. 이 책속에는 영영 잃어버릴뻔 한 고향의 산천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너무도 잘했다 싶은 귀향의 뿌듯한 환희가 가득 들어 있다. 고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체험할 수 있으면서도 귀향할줄 모르므로 버리고마는 아까운 행복을 혼자 즐기기에 너무 과분해하는 몸짓 소리가 들린다. 부러움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고향을 떠나본적이 없는 사람뿐일것이다. 김교수가 낙향해 자리잡은 곳은 경남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의 갯마을이다.

 그는 매일 새벽5시반쯤 책상앞에 앉는다. 책은 펴나 마나 하고 훤히 트인 창너머로 해돋이를 맞기 위해서다. 그래서 『어느 겨를엔가 책상앞에 앉는다는게 책앞에 앉기 보다는 바다앞에 앉는것이 되고 말았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마당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며 『붓방아 대신 호미방아』를 찧고 이따금 좌이산숲에서 난을 캐거나 동화리의 물깃에서 돌을 줍기도 한다. 김교수는 이 포근한 귀소를 『과원의 가을맞이 같은 노년의 뜨락』이라 했다.

 그 뜨락을 찾아가 본다.

 책이 안내하는대로 『고성읍에서 우악스런 감티재를 넘고 또다시 기나긴 소슬한 장치를 넘어서 홀연 세상이 사라져버린 끝, 오직 묘망한 자란만 물마루만이 트인곳』에 김교수의 하얀 집이 있다. 20여호 되는 부락의 맨 위쪽이다. 앞뜰 뒤뜰에 귀한 나무와 묘한 돌들이 올망졸망 늘어섰다. 모두 서울서 주인을 따라 이민온 종자들이다. 아담한 2층짜리 건물은 한 교수의 60평생 온축을 담을 장고로서는 좁아보인다. 위층에 오르면 동남쪽으로 난 유리창 틀안으로 책에서 그토록 자랑하는 자란만이 가득찬다. 길게 누운 자란도 너머로 여러 섬들이 겹겹이 만을 메웠다. 겨울 햇볕이 여기 다 모였는지 방안은 온실처럼 따뜻하다. 뒷밭에서 딴 누렁호박들이 탁자옆에 쌓였고 수확한 유자가 찻잔에 담겨 나온다.

 김교수의 낙향은 호사도 아니고 안일도 아니다. 창밖으로 장려한 일출을 바라보며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을 듣는 사치는 출향관하여 입신하고 돌아온 향인에 대한 고향의 답례일 뿐이다. 돌아오기만 하면 그만일 것인가. 낙향이 그냥 빈둥빈둥하는 귀와여서는 안된다. 활동무대에서의 퇴장일수도 학식의 퇴장일 수도 없다.

 『이제 나는 원점에 돌아와 비로소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것은 다시는 더 없을 최후의 시작이 아니던가』

 김교수는 「최후의 시작」을 시작했다.

 차를 몰고 2시간 거리인 김해의 인제대학에 출강을 한다. 지방대학에의 봉사다.

 읍에 고성문화사랑모임을 만들었다. 서예인, 약국주인, 돌담쌓는 사람등 각종 직업인이 모인 이 모임이 매달 문화강좌를 연다. 주부등 각층의 주민들이 수강을 한다. 강의는 문학뿐 아니라 건축, 농사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는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자란도를 조그만 문화기지로 만들 생각이다. 10여가구가 사는 이 섬에 교실 3개의 국민학교 분교가 있어서 여기서 매년 주요 무형문화재인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등 탈춤의 심포지엄을 열겠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본시 민속학의 권위자라 어쩌면 자란도는 우리나라 탈춤 연구의 본산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또 고향땅의 자연계에도 관심이 많다. 곤충이나 새의 분포등을 조사하여 문화자연지도를 제작하고 싶어한다.

 김교수의 이런 귀향정신에 감화되어 이미 서울의 어느 사회학 교수와 인근 삼천포의 음악가, 마산의 화가등이 송천리에 이사올 터를 잡아놓았다. 이렇게 되면 자란만의 고즈넉한 포구는 쩌렁쩌렁한 문화인촌으로 고명해질 것이다.

 한 문인학자의 귀향이 이렇게 지역문화의 구조를 바꾸어 놓는다. 한 문화인의 귀향이라기보다 한 문화의 귀향이다. 그것이 구심점이 되어 문화적 위성을 이룬다. 이런 위성들이 전국에 산재할 때 우리나라는 문화대국이 된다.

 김교수의 말대로 『출발은 귀환의 시작』이다. 고향을 떠난 소년이 학식과 경험과 명성을 안고 나이 들어 돌아오는 것은 만선의 귀항이다. 지적 축재를 그를 키운 고향에 환원시켜야 한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돌아가자. 전원이 장차 묵으려하거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귀거래혜 전원 장무호불귀)로 시작된다. 황폐한 것이 전원의 논밭뿐이랴. 지금 우리가 경작해야 할 것은 시골의 문화적 황무지다.

 김교수가 귀향을 재촉하게 된것은 정년을 넘긴 존경할만한 노교수 한 분이 서울 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허둥대는 것을 보고서였다고 한다. 길거리의 지식인들아, 고향으로 돌아가자, 가서 향토문화를 일구자― 김교수의 귀향은 이 외침의 선창이다.【본사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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