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끌면 불리” 직접설득 선택/여론주시… 「인책론」 등 대두도 김영삼대통령이 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쌀시장을 지키지 못한것을 사과한것은 예상한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표현의 강도는 예상보다 높았다. 김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사과」 「진솔하게 사과」 「책임을 솔직히 인정」 「쌀 수입 개방을 막지 못한 죄책감」 「죄송스럽게 생각」등의 표현을 썼다.
김대통령은 쌀 수입 개방에 대해 『이제 이 길 밖에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결단을 내린것이라고 했지만 쌀 수입 개방으로 분노한 민심을 수습하는 길 역시 솔직한 대국민 사과밖에 없다고 생각한것 같다. 대국민 직접 호소로 쌀정국의 파고를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것이다.
김대통령은 강도높은 사과와 함께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했던 점을 역설하며 국민들의 이해를 호소했다. 담화의 제목부터가 「고립을 택할것인가, 세계로 나아갈 것인가」였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고심이 깔려 있다고 보인다. 김대통령은 『쌀을 지키기 위해 관세무역 일반협정(GATT) 체제를 거부하고 국제적 고아로 살아갈것이냐, 아니면 GATT 체제를 수용하면서 세계화 국제화 미래화로 나아갈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고뇌했다』고 토로했다. 『쌀을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만 미련할만큼 홀로 남으면서까지 비장한 각오로 노력했다』며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는 그 마지막 벼랑에 까지 우리는 갔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적 성장과 국부를 신장시켜 나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결단의 이유를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건을 고려할 때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로 우리가 잃는것 보다는 분명히 얻는것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또 이 시련을 농촌을 새롭게 일구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따라 농촌과 농업지원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와 여당은 오는 11일 UR대책을 위한 고위당정회의에 이어 23일 김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신경제회의를 계획하고 있다. 김대통령 표현대로 「농민들이 달라지는것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대책을 내놓겠다는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이처럼 쌀시장 개방에 이른 경위를 설명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면서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그렇지만 이같은 호소가 목적한대로 국민과 농민 감정을 완전히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거둘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를것 같다. 11일에는 쌀시장 개방저지를 위한 또 한번의 국민궐기대회가 예고돼 있다. 야당의 공세도 줄기차게 계속될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를 의식한듯 『개방론자는 매국노요, 반대론자는 애국자라는 이분법은 국론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며 『부득이한 개방과 그에 대한 반대가 정쟁으로 번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목적한만큼 호전되지 않아 또다른 국면타개책을 써야 할 시점이 올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있다고 보아야 한다. 당장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대비한 준비미흡등을 내세운 관련 책임자 인책 요구를 김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할지도 관심사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이 시점에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패배주의, 내부분열과 함께 책임전가』라며 자신이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했다. 언뜻 다른 사람의 책임을 굳이 묻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청와대내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앞에 사과했는데 다시 인책성 당정개편을 한다는것은 모양이 이상하다는 얘기가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민심수습과 국정의 매듭을 짓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정개편을 단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수그러들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설령 김대통령이 아직은 당정개편의 뜻을 굳힌것은 아니라 해도 앞으로 연말까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김대통령이 여기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것은 민심의 향배와 함께 효율적인 국정운영의 처방일것이다. 청와대가 김대통령의 이날 담화내용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것도 이때문이다. 자칫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경우 김대통령의 앞으로 국정운영은 시련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최규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