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걸고 쌀시장 개방안할것/92년11월22일/최소시장 접근방식도 허용 못한다/93년11월23일/장관이 모를리있나 “개방없다”단언/93년11월26일/일부서 정부의심하나 절대로 정직/93년12월2일 쌀시장 개방이 확정되자 농민들의 근심에 못지않게 국민들의 분노도 만만치않다. 이 분노는 개방을 저지하지 못한데 대한것이 아니라 정부의 식언에 쏠리고있다. 「개방절대불가」를 외치다 하루아침에 「개방불가피」로 돌아선 정부의 고위당국자들을 보는 국민의 심사는 배신감외에 달리 표현하기 힘든 상황이다.
쌀주무장관인 허신행농림수산부장관부터 지키지못할 「개방불가방침」을 남발해왔다. 그의 개방불가 발언은 워낙 많아 모으면 책 한권은 족히 될듯하다. 허장관은 쌀부분개방보도가 난 11월26일 국회농림수산위 소위에서 『문민정부하에서 농정책임자인 장관이 모를리가 있는가. 쌀개방을 검토할 의향은 없으며 대통령의 의지도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제네바로 떠나기 2일전인 11월30일 예결위에서는 『6백만 농민의 생존을 한시도 잊지않고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쌀을 지키도록 힘을 다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기도했다.
제네바로 떠나던 2일 공항기자회견에서는 『정부입장은 아직까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여시간후인 3일(제네바 현지시간) 슈타이헨EC농업담당집행위원장과 만나고나서 한국협상단으로부터 『사실상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체념이 나왔다. 그리고 4일(현지시간) 에스피미농무장관과의 회담후에 허장관은 『개방유예기간 연장과 최소시장 개방 폭 축소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개방확인발언을 했다. 5일에는 『농민 피해가 가지않도록 최선을 다하고있다』고 했다.
경제총수인 이경식부총리의 말도 허장관에 절대 뒤지지않는다. 이부총리는 10월8일 외신기자초청 오찬에서 『한국은 인구15%이상이 쌀농사에 종사하고 있어 정치·경제적으로 일본보다 어려운 입장이다. 쌀만은 개방하지않겠다』고 공언했다. 11월 23일 예결위 답변에서는 『쌀은 관세화는 말할것도 없고 최소시장접근도 허용할 수 없다』고 되풀이했다. 이 시점을 전후해 야당의원들은 예결위에서 줄기차게 쌀개방의 가능성을 물고늘어 졌으나 이부총리는 특유의 어눌한 어조로「개방불가」만을 답했다. 그러다 제네바에서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4일낮 기자간담회에서는 『버스가 마지막 한 명이 탈 때까지 기다려주는게 아니다』는 비유를 동원, 말을 바꿨다.
경제총수인 이부총리가 뒤늦게 말을 바꾼 상황과 관련, 정부의 한 관계자는 『허장관이야 쌀 주무장관으로서 쌀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얘기 할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이부총리는 경제총수로서 쌀개방파고를 사전 예측, 충격을 줄이는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야했다』면서 『어떤 일이든지 책임을 위로 넘기고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안일한 자세가 오늘의 사태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내각의 지휘자인 황인성총리도 개방불가만을 외치다 어느 날 갑자기 현실론을 언급, 국민들을 허탈케했다.그는 5월 6일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에 답변하면서 『쌀시장개방불가라는 정부입장은 확고하다』고 밝혔다. 11월 2일 정기국회 답변에서도 『쌀문제에 있어 기존 입장에 전혀 변함이 없다. 관세화건 최소시장이건 어떤 방안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5월과 11월 사이에 달라진것은 「확고하다」와 「변함없다」라는 표현뿐이었다. 협상단이 제네바로 떠나던 2일에도 『끝까지 쌀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의 변함없는 자세』라고 단언했다. 심지어 『일부에서 이 문제를 놓고 정부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절대로 그런게 아니다. 정부는 어디까지나 국민앞에 정직하다』고까지 호언했다. 이날 간담회후 총리실직원들조차 『나중에 어쩌려고…』라며 걱정했다. 그로부터 불과 2일후 황총리는 『UR협상으로 공산품수출이 늘어나면 거기서 확보되는 재원으로 농촌을 개조할것』이라며 『이 일이 오히려 농촌과 농민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하자』고 그동안의 약속을 뒤집었다.
김영삼대통령도 쌀개방을 저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못했다. 김대통령은 92년 11월22일 충북 제천의 선거유세에서 『대통령직을 걸고 쌀개방을 하지않겠다』고 공약했다. 이후 유세에서는 「직을 걸고」라는 표현은 사라졌지만 쌀개방불가의 공약은 계속됐다. 그 해 12월1일 관훈토론에서 『직을 걸고라고 한것은 그만큼 강조하느라 그런거지 그걸 가지고 뭘…』이라며 톤을 낮췄다. 당선후 금년 1월9일의 아사히신문, 2월22일의 뉴스위크회견에서도 『쌀은 경제적 사안이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다. 개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11월23일 워싱턴 한미정상회담후 특파원과의 오찬에서 『한국의 특수사정을 조화시켜야하나 대국적 견지에서 판단해야할 문제』라고 여운을 남겼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귀국후 국회연설에서 쌀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침묵하고있다.【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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