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은 쌀시장이 개방쪽으로 사실상 결말이 났는데도 여전히 침묵을 계속하고 있다. 청와대 당국자들도 되도록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싶어한다. 여러가지 생각이 담긴 의도적 침묵으로 볼 수도 있지만 문민정부 출범이후 최대의 시련이랄 수 있는 쌀시장 개방문제에 청와대가 이렇듯 침묵을 계속하고 있는것을 보면 김대통령이나 정부가 겪고 있는 고민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청와대측은 쌀시장 개방문제가 처음 터졌을 당시 『김대통령이 뻔한 상황을 눈앞에 두고 개방불가를 거듭 천명하겠느냐, 아니면 개방불가피를 선언하겠느냐』고 어려운 입장을 설명했다. 한 고위관계자는『대통령의 침묵 자체가 고도의 협상전략일 수도 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김대통령의 입장표명없이 「자연스럽게」쌀시장개방의 물꼬를 트는 방식을 택하고있다. 허신행농림수산부장관이 제네바에서 관세화 예외는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됐다고 하자 청와대측도 슬며시 이를 정부의 공식입장 표명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6일 쌀시장 개방과 관련된 협상이 끝날 때까지 대통령이나 정부의 이에 대한 입장표명이나 공식발표는 없을것이라고 단언했다. 허장관과 캔터 미무역대표부대표와의 7일 회담에 이어 12일 에스피 미농무장관과의 최종협상을 지켜본 뒤에나 정부의 무슨 발표가 있을것같다는 얘기이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이 김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요구한데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일축했다.
요는 처음부터 견지해온대로 대통령이 쌀문제와 관련해 전면에 부각돼 비난의 화살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태는 피하겠다는 생각인것이 역력하다. 황인성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이 지난 주말부터 쌀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피력하고나선것도 이같은 청와대의 의도를 읽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렇지만 김대통령이 아무런 「특단의 조치」없이 쌀시장 개방에 따른 파고를 넘길 수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데 청와대의 고민이 있다.
협상이 완전히 끝난 뒤 정부의 농촌지원을 위한 종합대책이 발표될것이고 국민에 대한 호소와 홍보가 줄을 잇겠지만 흐트러진 민심을 단숨에 수습하기에는 힘들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고단위 처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 대폭 개각가능성이 점쳐지는데 대해 청와대관계자들은 대체적으로 회의적 반응이다. 김대통령이 그렇게 부인해오던 개각을 한다는 자체가 쌀시장 개방의 잘못을 온통 시인하는 결과가 된다는것도 한 이유로 얘기된다.
반면 쌀시장 개방에 따른 책임을 대통령 아닌 누군가가 분명히 져야 할 상황이 협상 종료와 함께 올것이라는 전망에서 개각을 필연적으로 보는 관측도 많다. 결과야 어찌되든 내각 총사퇴의 수순이 있지않겠느냐는 전망도 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내각의 경제팀들이 날아오는 화살을 적극적으로 막지않고 무조건 청와대로 넘기려는 책임회피 자세가 지금의 사태를 몰고 왔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않다.
또 청와대가 아직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는 김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발표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청와대는 제네바에서 진행되고 있는 협상에서 우리의 요구조건이 어느 정도 관철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있다. 만일 일본보다 좋은 조건으로 쌀시장이 개방된다면 정부의 입장이 그런대로 나아질 수도 있을것이다. 청와대가 무슨 발표가 있어도 12일 이후라고 강조하고 있는것도 막판까지 가서 보자는 측면이 있다. 김대통령도 여러가지를 검토하고 있겠지만 상황을 좀더 보려는것같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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