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봄 기시 노부스케(안신개)는 대망의 총리에 취임하자 한가지 결심을 굳게 했다. 선배 총리인 요시다(길전무)가 샌프란시스코 미일강화조약, 하도야마(구산일랑)가 대소수교를 매듭지었듯이 자신도 재임중 외교적 대업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일안보조약을 고치는 것. 당시의 조약은 미국이 일본의 안보는 물론 내란의 수습까지도 맡게 되어 있었던것을 대등한 쌍무조약으로 고쳐 패전으로 위축된 국위를 회복시킨다는 것이었다. 기시는 취임 3년째인 60년1월 워싱턴을 방문, 미국과 합의한 뒤 이어 의회의 비준을 거쳐 아이젠하워대통령을 일본에 초청, 비준서를 교환키로 했다.
하지만 4월 중의원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하자 야당과 총평 전학련등은 반미를 외치며 아예 조약폐기촉구데모를 벌였고 이에 기시는 정권을 걸고 강행키로 했다.
5월19일 밤11시반이 넘어 드디어 작전을 개시했다. 야당의원들이 사회를 막기 위해 의장실앞에서 농성하는 그 시간 안보특위에서, 오자와 사에키(소택좌중희)위원장은 야당이 손 쓸 틈도 없이 비준안을 전격상정, 「이의없습니까」 한마디로 통과시켰고 기요세(청뢰)의장은 이튿날인 20일 0시15분 여당의원들만이 자리를 지킨 본회의장에서 상정, 통과를 선언했다. 불과 20여분사이에 두단계 날치기통과에 성공한것이다. 오자와위원장은 현호소카와내각의 막후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의 부친으로 여당내의 변칙사회의 명수여서 이번에도 악역을 해낸것.
그러나 날치기처리는 조약개정을 지지했던 많은 국민들마저 분노케하여 연일 수만명의 반정데모가 계속됐고 결국 기시는 아이크의 방일중지를 요청한뒤 6월23일 미·일간에 비준서가 조인·발효되자 총리직을 사퇴했다.
기시는 날치기처리가 반민주·반의회적행위임을 잘 알면서도 국가발전과 국익을 위해 극약료법을 썼고 그 뒤 책임을 지고 총리직을 결연하게 사퇴한것이다. 덕분에 일본은 나라의 체면도 세우고 미국의 공짜핵우산아래서 마음놓고 60∼70연대 경제발전에 주력, 경제대국의 기틀을 다졌다.
민자당이 문민시대에 들어와 새해예산안등을 국회예결위등서 변칙―날치기 통과시켜 국민을 아연케했다. 하기야 날치기를 하게 된 이유와 원인을 따지자면 여야 모두에게 잘못과 책임이 있다.
여당은 예산안처리시한이란 법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행했다지만 정기국회 석달동안을 무위와 유유자적하게 보낸 여당이 얼마만큼 대야설득과 협상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가. 김영삼대통령이 바로 1주일전 국회에 나와 정치개혁과 함께 정치의 개방화, 국제화, 세계화를 역설했는데 이를 앞장서 실천해야할 여당이 변칙이라는 한심한 카드를 꼭 활용했어야만 했는가. 야당 역시 약속을 잊은채 예산안을 볼모로 정치적 흥정만을 고집하다가 모든것을 놓친 태도가 과연 옳았었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2일 하오에서 심야까지 보인 날치기소동은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저질성을 보여주는 추태의 한마당이었다. 여야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뒤엉켜 강행을 기도하고 저지하는 와중에 여러 사람이 지갑과 시계를 분실했다니 소매치기들까지 원정, 가세하여 시장판·난장판을 벌인 셈이다.
날치기처리가 정치를 병들게 하고 또 후퇴시킨다는것은 숱한 변칙처리로 얼룩진 우리의 의정사가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극약처방인 날치기가 구국 위국용이 아니라 거의가 장기집권과 정권유지용이었기 때문이다.
「날치기」는 어떤 경우에도 없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날치기의 진짜 배경은 여야가 상대방을 경시, 제압하고 골탕먹이려는데서 비롯된다. 때문에 이런 태도를 시정하지 않는 한 새정치도 정치개혁도 요원할 뿐이다.
따라서 먼저 민자당은 책임있는 여당답게 국민에게 사과하고 당지도부는 스스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며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변칙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약속해야 할것이다. 야당도 앞으로는 예산안과 추곡수매안등 국민과 농민이해에 직결되는 의안은 다른 정치적 쟁점과 연결지어 흥정하지 않는다는것을 분명히 다짐하는게 마땅하다.
이어 여야는 이 땅의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명분정치」 「껍데기정치」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 「승패정치」 「잡아당기고 골탕먹이는 정치」등의 구태를 훌훌 버리고 의석수나 당세에 관계없이 국민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게 주장하고 설득하고 협상하는 「열린정치」 「대화정치」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것이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