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는 「층계」에 해당하는 말이 여러 개 있다. 층층계, 계단, 층층다리 등이다. 이 가운데 층층계와 층층다리는 요즘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고, 층계와 계단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층계와 계단의 의미 차이는 그리 예민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자세히 들어 보면 옥내외를 막론하고 「계단」을 쓰고, 옥내에서는 「층계」를 주로 쓰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리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한번 의미를 잘 분화해 쓴다면 여러 모로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 계단의 종류는 제법 여러 가지이다. 오래된 형태인 사닥다리와 섬돌도 있고, 특수한 쓰임새를 위한 비상계단, 기계화된 자동계단 등이 손에 꼽힌다. 예전에 이층집에서 집안에 층계를 놓을 때에는 일자, 기역자, 디귿자 등의 모양이 많이 선호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공간을 아끼기 위한 나사 모양의 층계가 적잖게 눈에 뜨인다. 좀 비좁은 느낌이 없지 않으면서도 공간 전체가 꽉 짜인 기분을 준다.
나사처럼 휘돌아 오르는 이러한 층계를 사람들은 대충 나선층계 또는 나사형층계라고 부르고 있고, 사전에도 그렇게 올라 있다. 이렇게 멋없이 부르다가 겉멋부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영어로 「와인딩」층계라고 이름짓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와인딩(winding)이란 말도 그냥 「감김」이라는 뜻이니 멋없기는 매한가지다.
감겨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우리 말은 「똬리」라고 한다. 물동이를 머리에 일 때의 머리받침의 모양, 뱀이 몸을 틀어 공격 자세를 취하는 모양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모양 역시 영어에서처럼 감김의 뜻만 가질 뿐 나사처럼 오르내리는 형상은 잘 드러내지 못한다.
다른 낱말들 가운데서는 비슷한 뜻을 가진 「트레―」라는 접두사가 비교적 나선형을 더 뚜렷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발견된다. 비록 구체적인 용례는 「트레머리」, 「트레방석」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트레층계」는 「똬리층계」보다 나사모양 층계의 모습을 훨씬 잘 연상시킨다. 더구나 요새는 트레머리하는 사람도 안 보이고 트레방석도 눈에 뛰지 않으니, 아까운 말 없어지기 전에 잘 간수해 써 보자는 의도가 있음도 굳이 숨기고 싶지 않다.(연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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