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밀고 덮치고 나뒨굴고 뒤엉켜 싸움박질을 하는, 이런 행태가 문민정부의 정치수준이요 국정운영의 실상인가. 2일 국회 의사당에서 벌어진 여야의원들의 치졸한 활극과 일련의 날치기 사태를 지켜 본 국민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다. 온 국민의 축복속에 출범했으며, 아직도 국민들로부터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는 새 정부가 지나간 구시대의 권위주의 정권들이 버릇처럼 자행하던 구태 그대로를 답습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로써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혼미상태에 빠진 정국과, 특히 한반도를 둘러싸고 국제적인 긴장과 통상마찰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가중될 것이 틀림없는 내부로부터의 혼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여당에 의해 기습적으로 강행되고 시도된 날치기 사태는 「법정시한」을 지키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문민정부 등장이후 처음으로 빚어진, 결코 정치적이라고 할 수 없는 물리적 충돌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또한 그 충돌이 상식을 넘어선 것이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강행처리가 문민정부의 정면돌파식 정치철학 및 정국관과 결코 무관한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앞으로의 국정향방에 대해 새삼스러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대의정치요, 대의정치의 핵심은 토론과 설득이며 「주고받음」이다. 타협 못하고 주고받지 못하는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날치기마저도 불사하는 정국운영 행태를 보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이러한 강행과 무리가 문민정부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손상을 줄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그것을 감내하기로 한 정부여당의 속셈이다. 과연 무엇이 정국경색과 정치실종을 초래하게 될 사태마저도 무릅쓰게 한 것인가.
예산안처리를 둘러싼 여야협상의 마지막 쟁점이었던 안기부법 개정안중 이른바 「수사권」문제에 대해 우리 정치권이 보여준 정치력도 너무나 실망스럽다. 냉전시대는 지나갔으나 아직도 냉전시대의 유산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실정을 감안한다면 수사권을 둘러싼 절충과 타협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여야정치권이 끝내 설득시킬수 없었던 장외의 영향력이 우리의 정치권에 엄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태를 되풀이한 점에서는 야당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국정책임의 절반을 나눠 가진 야당이 타협도 대안도 없는 강견일변도로 치닫는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날치기를 불러들이고 방조한 셈이 되는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비를 가리기에는 시대의 흐름이 너무나 급박하다. 세계화 개방화의 요청이 절대절명인때에 우리 모두의 발목을 잡는 이 정치수준을 어떻게 할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