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곡가 인건비에도 못미쳐/「쌀개방」대책없어 아예 포기 결심 『그린벨트만 풀리면 미련없이 저 논을 팔아버릴 겁니다. 농사일을 대물림한다고요? 중학생 아들놈은 절대 농사 안짓게 할겁니다』
쌀시장 개방을 둘러싼 정부와 야당, 농민단체들의 갈등을 지켜보는 서울의 농부 조영섭씨(41·서울 강남구 율현동 309의16)는 답답하고 착잡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농사만 지어온 조씨는 정부와 여당이 확정한 올 추곡수매가가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할 정도로 낮은 판에 쌀시장까지 개방된다면 농민들은 살 길이 없게 된다고 믿고 있다.
금싸라기땅이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의 논 3천평 밭 1천평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20여년째 경작해온 조씨는 올해 추수한 쌀 60가마를 정부에 팔지 않고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값으로 넘길 계획이다. 농사지어 잘 살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다.
『2∼3년전만 해도 대규모 영농이나 비닐하우스재배를 하면 농민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쌀시장 개방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은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도 쌀시장 개방압력에 굴복한것을 보면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겠지만 농민은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이젠 그것마저 불가능하게 된겁니다』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92년말 현재 서울의 농가는 3천3백94호, 벼경작면적은 8백61㏊. 전국농가 1백64만1천호의 0.21%, 전국벼경작면적 1백31만5천㏊의 0.06%에 불과하지만 서울의 농사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서울시는 올해 12월2일부터 8일동안 3천섬을 수매할 계획이다. 정부의 전국추곡수매량 9백만섬에 비하면 보잘것없고 큰 관심도 못받는 서울의 농민들도 천직으로 알고 농사를 지어온 점에서는 시골농민과 마찬가지이다.
조씨는 『강남구의 농가는 45호였으나 대부분 화훼영농으로 돌아섰고 나머지 농민들도 기회만 되면 땅을 팔려 한다』며 『쌀시장 개방에 뚜렷한 대책이 없는 지금 답답하기는 다른 농민들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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