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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엄한 태평양시대/이성준(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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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엄한 태평양시대/이성준(화요칼럼)

입력
1993.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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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시대가 줄달음쳐 달려오고 있다. 태평양시대는 진행형이기 보다는 이미 와 있다는 완료형의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시애틀에서 성황리에 막을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15개국의 각료회의와 지도자회의는 태평양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인시켜 주고있다.

 태평양 지역은 세계GNP의 55%, 세계교역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APEC회원국이 전세계면적의 25%, 전세계인구의 40%, 전세계 국내총생산(GNP)의 50%를 점하고 있다는 통계(외무부자료)는 태평양지역이 앞으로의 세계사를 주도해 나갈 것임을 새삼 예고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와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는 신흥공업국(NICS)의 대명사가 되었고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잠재적인 시장성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후 냉전시대를 주도했던 대서양시대는 서서히 퇴조하면서 태평양지역이 「포스트냉전시대」의 주역이 되고 있음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시애틀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과 워싱턴의 한미정상회담은 태평양시대를 맞는 우리의 위상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게 한다. 이에 앞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태평양시대의 중심축에 서 있는 것이다.

 전후 냉전구조의 틈바구니에서 분단의 멍에를 걸머지고 허덕거려야만 했던 우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태평양시대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태평양시대의 개막이 갖는 냉엄한 측면을 분명히 직시해야만 한다. 기회는 잘 이용하면 행운을 가져다주지만 잘못 대응하면 위기가 될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태평양지역국가의 역내교역량이 70%선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자. 이 지역국가들의 관계가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중 경제개발의 선두주자였던 우리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과 일본이 기술과 지식집약산업에서 우리보다 절대우위를 지키고 있고 중국과 아세안(ASEAN)국가는 노동집약산업부분에서 우리를 따돌린지 이미 오래이다.

 또 태평양시대의 최대주주임에 틀림없는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묶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APEC이라는 양날의 칼을 쥐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NAFTA는 세계최대의 경제블록이 됐다.

 미국이 NAFTA를 배타성을 지닌 역내경제협력체로 몰고갈 경우 태평양지역국가들은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맞을수도 있다. EC와 일본경제를 견제하기 위해 고안된 NAFTA는 결과적으로 아시아 신흥공업 국가들에 최대의 타격을 줄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우리는 미국의회의 NFATA비준으로 인해 북미대륙 수출에 있어 간단치 않은 타격을 감내해야만 할 처지이다.

 그런가하면 일본은 세계를 상대로한 경제전쟁의 최대 전승국이다. 상호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진 태평양지역의 경제체제 모색에 있어 일본의 탁월한 경쟁력은 주변국가를 압도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또 경제전쟁의 이면에서 치열하게 전개될 이 지역의 정치·외교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각축전도 간단히 보아넘길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89년 호주와 함께 APEC창설을 주창했고 91년 서울3차 각료회의에서는 의장국으로 중국과 대만 및 홍콩을 가입시키며 APEC헌장격인 「서울선언」을 채택하는등 태평양시대 개막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우리가 이 노력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자신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의 국제경쟁력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느니 「아시아의 세마리 용중 한마리에서 미꾸라지로 전락했다」느니 하는 달갑지 않은 얘기들을 들어야 할 정도로 급전직하 했다.

 관료주의의 폐쇄성과 형식논리는 분초를 다투는 국제경제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창의력 발휘를 저해하고 있다. 고금리 고지가 고임금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경제토양은 국제경쟁력을 갈수록 취약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말로는 국제화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사고의 틀은 과거지향적이라는 지적을 받고있다. 지역감정, 집단이기주의등의 사회병리현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라밖에의 환경적응을 나라안의 문제와 분리시켜서 생각할수는 없다. 지금의 세계는 촌각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평양시대 개막에 대해 필요이상으로 들떠있지 않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태평양시대는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태평양시대라는 세계사의 조류속에서 냉엄한 시험대에 서있는 셈이다.【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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