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지역주의」 견제할 명분 축적/북핵해결 공조로 다원외교 틀 다져/기구확대작업,회원국 입장차 조율 숙제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가 막을 내렸다.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된 이번 회의는 지난 20일(현지시간)의 지도자회의와 17, 18일의 각료회의에서 「지도자 경제비전 성명」과 「무역 투자 기본문서」를 각각 채택함으로써 아·태지역의 궁극적인 경제통일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회의는 그동안 있었던 네차례의 회의가 외무·통상각료들의 실무적인 역내 경제협력방안 협의에 한정돼 왔던점에 비추어 회원국의 정상들이 참석해「경제를 넘어선」다각적이고도 포괄적인 공감대형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APEC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에 이같은 APEC확대작업은 회원국간의 인식차이를 노정, 이 회의의 기본틀인 경제협력문제에 까지 적지 않은 과제를 던져주었다는 지적도 함께 받고있다.
▷무역자유화◁ 내년초부터 EC통합을 위한 마스트리히트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국제적인 지역주의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번의 APEC회의는 아·태지역 15개국이 「탈블록 자유무역지대화」를 선언함으로써 이같은 지역주의를 견제할수있는 뚜렷한 지렛대를 형성케 됐다는 의미를 갖고있다. 특히 아·태지역은 전세계 GNP의 55%를 차지하고 있고 총교역량의 40%이상을 점유하고있어 「단일 시장권」을 이루겠다는 이번의 「지도자 경제비전 성명」은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과 함께 전세계의 자유무역을 위한 양대 축으로 발전될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경제블럭으로 대두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명분과 수단을 이번 회의를 통해 어느 정도 확보할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태지역내의 어떠한 경제블록에도 포함돼 있지 않은 우리로서는 APEC의 확대 자체가 이러한 블록을 약화시키는명분이 될수있기 때문이다.
▷기술·자본이전◁
이번 회의에서 설치키로 합의한 무역·투자위원회(TIC)는 역내국가들간의 실질적인 기술과 자본의 교류를 예정하고 있다. 중소기업육성방안에서 금융투자의 이전양식까지를 구체적으로 설정케될 TIC는 APEC을 명실상부한 경제협력체로 발전시키는 가장 확실한 담보자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지도자회의에서는 이와 관련, 『역내 자본의 흐름을 위해 재무장관회의를 발족시킨다』고 약속했으며 『노동기술 향상과 노동력 유동성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데 합의했다. 또 『각국 기업인들이 포럼을 만들어 역내 교역과 투자를 촉진시키고 상품표준화와 같은 지역협력을 촉진하는 사업을 APEC이 수행할것을 촉구한다』고 선언했던 점등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 대목이다.
▷공동체개념확산◁
이번 회의에서 당초 우리의 목표였던 「아·태공동체」로의 발전은 일단 무산됐다고 봐야할것이다. 그러나 이에대한 역내국가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는데는 긍정적인 성과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각료회의는 어떠한 협의체보다 다양성과 이질적 요인이 많은 아·태지역의 「공동체」개념이 필요이상으로 스스로를 묶어버릴수 있다는 아시아국가연합(ASEAN)쪽의 지적에 따라 일단 이 문제 논의를 유보키로 결정했다. 반면 이어 열린 지도자회의에서는 이의 필요성이 강조됐고 장기적인 과제로서의 의견일치를 보았던것이다.
현재의 「협의체」에서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문제는 APEC의 자체적 구속력과 맞물려 있는것이어서 EC나 NAFTA,AFTA등을 포괄해나가기 위해서는 거의 필연적인 과제가 될것이다. 특히 역내의 강력한 경제블록으로 대두된 NAFTA에 대항해 나가기 위해서는 공동체 성격의 구속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며 이는 당사국인 미국과 캐나다도 공감하고 있는 대목이다.
▷비경제부문조율◁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아·태지역이 경제분야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등 다방면에서 협력체로 성장해나가야한다는 인식을 함께했다는 점이다. 블레이크섬에서 열린 APEC지도자회의는 이같은 측면에서 지극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각국 정상들의 쌍무적 정상회담은 이를 충분이 뒷받침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우선 각국 정상은 북한핵문제에 관해 통일된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이번 APEC지도자회의가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한반도 주변의 미·일·중 3개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핵문제의 평화적해결에 「합의」한것은 이번 회의의 커다란 부산물로 인식되고있다. 또 각국 정상들이 우리의 개혁과 신외교에 관심과 지지를 보낸것 역시 이에 못지않은 성과로 보인다. 이는 그동안의 우리 외교가 안보차원의 수동적 외교에서 적극적인 다원외교로 나아갈수있는 분수령이 될것이며, 우리국내 정치에 대한 각국정상들의 빈틈없는 지지는 한반도내의 남북관계에까지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기타의문제◁
APEC회의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은 지도자회의가 앞으로 정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도자회의의 결론격으로 김영삼대통령이 『내년의 자카르타회의에서도 지도자회의를 갖자』고 제의하자 싱가포르와 호주가 즉각적인 찬성을 표했고 이에 클린턴미대통령도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호응함으로써 사실상 두번째의 APEC지도자회의가 성사된 셈이다. 이는 제3, 제4의 지도자회의를 예고하고있어 당초 우리정부가 원하던대로 「지도자회의의 정례화」는 거의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역내의 위치나 창설당시의 공로로 볼때 우리의 APEC내의 지위는 더욱 확실해질수있을 것이며 무역자유화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는 블록」을 갖게될 전망이다.
이번 회의로써 APEC회원국이 17개국으로 확대됐다는 점도 성과중의 하나이다. 시애틀 각료회의는 멕시코와 파푸아뉴기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였으며 현재 칠레가 가입을 위한 로비를 강화하고있다. 이들 국가들을 포함시킴으로써 APEC은 중남미까지를 자유무역지대의 틀 속에 넣을수있게 된것이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캐나다와 함께 NAFTA의 회원국이어서 이번의 가입으로 「APEC속의 NAFTA」라는 장기목표에 한걸음 다가선 셈이 된다.
또 APEC회의가 지도자회의를 수반케됨으로써 관련 당사국간의 정상회담이 훨씬 빈번해질것이란 전망과 함께 갈등과 오해에 대한 의견조율이 수월해 질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예만 보더라도 이번에 한중정상회담을 갖고 가장 적절한 시기에 북한핵문제에대한 양국의 의견조율을 이뤄낸 것은 중요한 성과의 한 대목이 되고있는 것이다.【정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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