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근로환경에 사고 잇따라/강제출국 잠정유보설 불구 “불안” 갑자기 추위가 닥친 21일 낮 12시30분 서울 성동구 자양동 669 자양동성당으로 두툼한 가죽점퍼나 외투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이방인 1천여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하오1시부터 멕시코인 마요한 신부(42)가 집전하는 일요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경기 의정부 부천 안산 성남시 일대에서 모여든 필리핀인 불법체류·취업자들. 언제 강제출국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속에 1주일을 일한뒤 만나는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그동안 못다했던 정담을 나누느라 부산했다.
그러나 영어와 필리핀어로 진행되는 미사직전, 20일 새벽 성당인근 성동구 화양동 일광기업에서 불이 나 창고안에서 잠자던 필리핀인 게리(46), 헬렌씨(41·여)등 2명이 숨졌다는 비보가 전해지면서 이들의 표정은 꽁꽁 얼어붙었다. 그들의 죽음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91년 11월 입국, 의정부시의 한 미싱공장에서 보너스없이 월40만원을 받고 일해왔다는 멜씨(32)는 『일하다 부상하는 동료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불법취업자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호소할 길이 없다』며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취업, 인력난에 허덕이는 영세업체에 도움을 주는 우리가 합법적으로 체류할 방법은 없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강제출국 여부가 주된 관심사임을 반영하듯 성당정문에서 배포된 주보 「가톨릭 필리피노 뉴스레터」도 『외국인 불법취업자들의 강제출국시한을 일정기간 유예할것을 검토중』이라는 이인제노동부장관의 기자회견을 머릿기사로 다뤘다.
이 소식지는 필리핀불법체류·취업자들의 대모로 통하는 「착한 목자 수녀회」의 메리 앤수녀(57)가 필리핀인들이 매주 1인당 2백∼3백원씩 낸 헌금중 일부로 제작하고 있다. 지난 9월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2가동에 「필리핀공동체」라는 사무실을 내고 소식지 발간, 필리핀인들과 업주간의 갈등해소를 위해 봉사중인 이성국목사(36)도 미사때마다 이 성당에 온다. 이목사는『필리핀인들이 불법취업중인것은 사실이지만 일손을 못구해 허덕이는 중소·영세업체들이 싼 값에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차원의 구제책이 속히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황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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