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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매(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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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매(1000자 춘추)

입력
199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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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오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을 어찌 다 꼽으랴마는, 현실적으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아이들 선생님들이다. 허겁지겁 살다보니 나도 제대로 못 돌보는 내 아이들과, 또 그런 아이들 오륙십명과 온종일 씨름해주시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저희들이 외로운 탓인지 나의 이런 고마움이 전해지는 덕분인지,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아이들은 복도 많다. 참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왔다. 선생님으로서도 성격파탄이 아닌 한 믿고 따라주는 학생이 미울 리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한동안 심각했다. 집에 돌아와 어찌나 매맞는 이야기만 하는지 아이를 꼭 삼청교육대에 보내놓은 기분이었다. 매도 매지만 그 속에서 황폐해져갈 아이들의 인성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 꽃 화분이나 사보내는것이 고작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5학년짜리 막내네 교실에 꽃을 사보낼 필요가 없어졌다. 교실이 이미 꽃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이들이 벌을 받아야할 때, 매를 맞든지 꽃을 사오든지 스스로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들은 주로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바지를 두둑히 껴입고 다니고, 여자 아이들은 동네 꽃집에 가서 꽃을 천원어치 정도 사오는 모양이다. 꽃 사올 일이 연거푸 생기면 아이들은 자기가 꽃 사갔다는 말을 엄마한테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사간다고 화원아주머니가 웃음을 터뜨린다.

 막내네 교실 생각만 하면 저절로 벙글거리게 된다. 벙글거릴 일이 그뿐 아니다. 딸아이는 청소시간에 「걸레빨기조」가 되었을 때 손이 트도록 걸레를 빠는가하면 온갖 。은 일을 찾아서 도맡아 하던 끝에 마침내 원하던 아이와 짝이 되는 숙원을 이루었다. 그렇게 짝궁이 된 꼬마시인과 꼬마화가가 주축이 된 딸아이네 조는 조별활동을 환경미화든 연극이든 프로 뺨치게 해내고 있다.  혼자 벙글거리다 넘쳐 한번은 딸아이를 붙들고 『얘, 너네 선생님 고마워서 어쩌니』 어쩌구 하면서 감격을 늘어놓았더니 아이가 한마디를 야무지게 던졌다. 『엄마, 저라고 학교에서 즐거운 일만 있겠어요? 그렇지만 엄마한테는 즐거운 이야기만 하고 싶은 걸요』 딸에게 즐거운 이야기만 하지 못한, 아니 오히려 그 정반대인 나는 한 대 얻어맞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꽃에 묻힌 교실에서 저 밝은 아이가 경험하는 「안」좋은 일이 안 좋아봐야 얼마나 안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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