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빈필하모니로부터 배울 바는 무엇인가? 그들이 남다르게 보여주는 음악적 팬터지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어떤 점을 보게되는가? 이미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와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역시 잘한다」 또는 「기대만 못했다」등의 평가를 내리고 싶지 않다. 단원 전체가 보여주는 완강할 정도의 안정된 연주는 사소한 문제들을 잊기에 충분했고 오자와의 음악은 독일의 구성적 음악의 묘미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체로 말해서 빈필의 이날 연주는 풍부한 볼륨이 있거나 힘이 있거나 매력적인 선율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애써 몇 마디로 줄인다면 섬세함과 입체적 구성이 있는 음악이라고 할까? 즉 하나의 선을 풀어가는 음악이 있고, 부분 부분의 면을 연결해가는 음악이 있고, 여러가지 변수들을 얽어 입체를 구성해 가는 음악이 있다고 암시적으로 비유한다면 이날 연주는 세번째 비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자연히 이런 음악은 더 많은 고려사항들을 추적하고 더 복잡한 음악적 맥락을 쫓아간다. 따라서 다면적이다. 좋을 때는 섬세하고 나쁘게 될 때는 혼란스럽다.
빈필의 이런 음악적 특성은 브람스를 비롯한 독일의 구성적 음악을 연주하는데 잘 맞는다. 평자는 15·16일 두차례 공연 가운데 16일의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그것은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서곡, 베르크의 「3개의 관현악곡」,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이었다. 이것은 모두 빈 고전음악의 전통을 계승해 간 음악으로서, 동기라는 벽돌로 음악이라는 집을 건축하는 수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빈필의 특징인 입체적 구성의 음악만들기에 적절한 레퍼토리이다.
오자와는 조성이 없기 때문에 청중들이 듣기 거북해 하는 알반 베르크의 음악도 구성을 들어내 보여주는 빈필 특유의 연주로 설득력있게 전달했다. 엄격하면서도 낭만적인 힘을 감추고 있는 브람스의 「4번 교향곡」에서는 좀더 볼륨과 감정의 분출이 보였으나 역시 아슬아슬할 뿐 음악적 품위가 흐트러지진 않았다. 특히 음악의 각 구문을 맺고 연결하는 호흡과 흐름이 돋보였다.
정리해서 말한다면 빈필의 음악은 최고의 세련성과 품위를 가진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것은 독일이 낳은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할 때 잘 발휘된다. 이들의 입체적 음악구성이 빈필로부터 배울 바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곧 우리 교향악단이 나아갈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율을 잘 풀어나가는것으로도, 혹은 풍부한 볼륨과 파괴적인 힘으로서도 독특한 색깔을 지닌 좋은 오케스트라 음악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어떤 길을 택할것인가는 앞으로 우리 교향악단에 주어진 과제이다.(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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