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에 이어 「국제화」가 기업체나 각종 공공기관에서 표어로 나붙기 시작한지가 오래 되었고, 김영삼대통령도 「국제화」를 우리가 나아가야할 큰 방향으로 재천명했다. 사실 지난 20여년간 우리의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이룩해 놓은 성과를 생각하면 「국제화」라는 구호는 오히려 낡은 느낌마저 준다. 세계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경제체제로 통합되어 가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우리도 이미 그 속에 중요한 구성원으로 편입되어 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택이란 이제 우리가 피동적으로 그러한 세계경제체제에 끌려 들어가느냐, 아니면 주도적으로 그 거대한 흐름에 편승하여 그 흐름 자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주도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주역이란 우리에게 아직도 매우 생소한 일이고 엄청난 도전이다. 그러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해 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대비를 하고 있는가. 지금까지는 뼈저린 가난에서 벗어나 남처럼 잘 살아 보겠다는 의욕 하나로 우리는 스스로를 놀라게 할만한 경제 기적을 낳았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피땀어린 노력이 발전의 원동력이었음은 물론이지만, 30년 사이에 국민평균생산을 80달러에서 6천달러가 넘게 올려놓게 된 데에는 「후진의 이점」이 작용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값싼 노동력, 손쉬운 기술과 자본 도입, 경계심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던 비교적 고무적인 국제환경이 모두 유리한 조건이었다. 잃을것이 그리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무지와 실수의 대가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후진의 이점」이 「선진의 책임」으로 역전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치열한 경쟁의 표적이 되어 있는 우리는 이제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개발함은 물론 기업 환경자체를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우리에게는 물질의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만이 아니라 생소한 외국시장으로 파고 들어가는데 필수적인 문화와 전통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깊은 이해가 필요하며,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일등국민에게 걸맞는 보편주의적 가치관과 도덕적 자질이 요청된다. 우리 민족의 통일을 이룩하는데에서뿐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는 일에서도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이익을 관리하는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절실히 요구되는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이해하고 공급해 줌으로써 우리의 이익을 또한 신장하는 성숙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우리는 얼마나 잘해오고 있는가.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있는 외국인들이 사적으로 친해지면 한결같이 표명하는 불만은 외국문화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시와 무관심이다. 최근에 일고있는 관광바람 덕분에 외부 세계에 대한 표피적 견문은 많이 넓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교역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나라들에 관해서 나마 우리는 얼마나 깊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회의 지식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그들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에 관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가. 이것은 단순히 언어의 장벽이라는 기술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 관해 무식한것은 그동안 우리가 밟아온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임이 드러난다. 우리 경제가 밖으로 뻗어나기 시작하던 1970년대 초부터 우리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구호로 내걸고 민족의 뿌리를 되찾아야 된다는 명분 아래 교양과목으로 가르쳤던 세계문화사를 대학의 필수과목에서 제외해 버렸다. 그것은 광복후 우리에게 불어닥쳤던 맹목적 서양숭배 풍조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보상적 의미도 가지고 있었지만 편협한 국수주의 풍조는 이른바 「민주화」시대가 시작되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따르면 세계사를 전혀 공부하지 않고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것이 가능해지며, 세계사 담당 전임교수가 한사람도 없는 종합대학교가 수두룩한 것이 국제화를 부르짖는 우리의 웃지못할 교육현실이다.
한국을 연구하거나 가르치는 외국인들에게는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외국의 역사나 문화를 전공하는 한국의 학자들에게는 연수나 연구를 위한 지원은 고사하고 방학동안에 자비로 외국의 도서관에 가서 연구를 하거나 국제 학술회의에 참여하려해도 외부로부터의 초청장이나 경비지원이 필요하다는 구실을 붙여 그것을 오히려 규제하려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의 문교행정이고 문화정책이었다.
국제학계에서 외국인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는 한국출신 외국학 전문가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큰 일인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밖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나 전문가들의 연구가 없이도, 국제사회에 관해 알 만 한 것은 다 알 수 있다고 하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도,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세계 경제 체제속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것이 가능할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생활이 국제화되면 국제화 되어 갈수록 우리의 정신적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소중히 간직하고 관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남을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며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을 최대한으로 배우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될 것이다.
사회주의 문화권에 대한 몰이해와 그로 말미암은 거대한 환상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했던 정신적, 물질적 대가가 얼마나 컸던가를 생각해 보면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 때문에 우리가 입는 손실이 비단 그쪽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님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것은 고사하고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도 국제화시대에 걸맞는 세계시민 교육은 이제 필수적이다. 그를 위한 정책적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때이다.<서울대교수·서양사>서울대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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