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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마무리/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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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마무리/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3.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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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대한해외참전전우회라는 한 단체는 월남전에 참가, 고엽제피해를 호소해온 5천6백64명중 처음으로 36명에 대한 피해보상소송을 대리해 주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의 고엽제 제조 7개사 가운데 2개사를 우선 그대상으로 하고 관련서류를 미국의 전문변호인단에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보다는 15∼16년 뒤늦은 것이고 다같은 참전국 호주, 뉴질랜등 보다는 근10년이나 뒤진 것이다. 그것도 승소해서 실제보상받는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얼마만큼의 시차가 더 생길는지 모른다.

 월남전으로 인해 엄청난 상처와 손실을 입은 미국이 월남전혐오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수 있다. 그러나 1982년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인 한해였다. 그해 11월11일 향군의날 수도 워싱턴에는 월남전 전사자 5만7천9백39명의 이름이 새겨진 월남전기념비가 제막됐다. 그날 거리에는 종전후 처음으로 참전용사들의 퍼레이드도 있었다. 그것도 시민들의 환호속에서였다.

 이런 상징적인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것은 기념비가 세워지는 과정에 있다. 한 참전용사에 의해 기념비건립이 제의되고 국민적 호응을 얻고 그것을 정부가 받아들이고 의회가 승인하기까지 그많은 반대와 지지의 토론과 논란이 거대한 화해를 이룩하고 그것이 지금 워싱턴의 명소가된 기념비를 낳게 했다는 점일 것이다.

○방기된 「월남전후」

 우리는 1964년 9월22일 월남의 붕타우에 1백40명의 육군이동외과병원 요원과 태권도 교관단이 도착한 이래 1973년 3월14일 주월한국군 사령부가 철수하기까지 9년간 모두 31만명이 참전, 그중 4천6백24명이 전사한 것으로 되어있다. 15년간 2백70만명이 참전한 미국에 비할바는 아니나 그밖의 어느 참전국보다 큰 규모였다.

 그러나 그 규모나 9년이라는 시간에 비해 우리의 「월남전후」는 텅비어 있다. 무관심이 아니라 방기상태다. 정부고 국민이고 마찬가지다. 고엽제의 경우가 너무도 이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수없이 후유증의 고통이 호소됐고 자살자까지 나왔지만 묵묵부답. 이제 겨우 소송의 시작이라는 단계에 와 있다. 그것도 정부의 주선아닌 민간단체의 주선에 의한 것이다.

 31만이라는 장병을 열대의 전장으로 끌고간 정부는 그간 숱한 다른 참전국의 보상사례에 접했을텐데 무슨 생각을 하며 이문제를 이토록 방치해왔는지 묻고 싶다. 지난해에는 고엽제피해자들이 전공상심의를 받기위해 서류를 신청했다가 당국의 기록관리 소홀로 상당수 장병의 파월기록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도 있었다.

 「월남전후」는 불가피하게 미국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그 뼈아픈 전쟁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정리한 책과 논문이 지난해말로 이미 8천건을 넘어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어쩌면 치욕적일수도 있는 전쟁에 대한 상기와 화해와 정리로써 「과거」를 뛰어넘고 있는지 모른다.

 군사정부로 통칭되던 정권들이 정작 우리의 월남전을 등한히 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군사정권이란 콤플렉스 때문이었는지, 역사에 대한 무지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시작할때 법석떨다 끝마무리는 으레 허술한 우리의 고질병 때문이었는지― 어느 경우이건 그것은 수많은 장병의 피와 땀에 철저히 배반적인 것이다.

 공식적인 전사외에는 몇권의 소설, 몇권의 자전적 기록들이 전부처럼 되어 있다. 내년이 월남참전 30년이 되는데도 대학이나 연구기관 어느곳도 「참전9년」을 냉정히 재평가해보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피의 대가로 얻은 「경제」에 자족하고 있는 눈치이다. 

 반전의 열기가 드세었던 미국에서도 세워진 월남전사자 추모비 하나 우리에겐 없다. 그것이 욕된것이건 영광스런것이건 자기의 「과거」를 이처럼 괄시하고서야 선진운운할 수가 없다.

○정부차원 정리를

베트남을 차분히 정리해보는 노력이 있어야겠고 그 주역은 파병의 주역―정부이어야 한다. 문민정부가 어느정부에 비해 이문제에 자유스런 입장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그범위도 참전의 배경, 의의에서 경제 사회 군사 국제관계에서의 득실까지 광범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과연 불명예스런 용병이었는지, 피와 땀의대가로 얻은 해외진출, 경제도약의 계기였는지, 공개와 토론으로 국가적 정답을 만들어 낼때가 왔다.

 지난5월 현충일날 클린턴대통령은 월남참전기념비앞에서 거행된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병역미필에 반전경력으로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월남전 기념행사에 참석한 첫 현직 대통령이란 점에서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전쟁에 대한 견해차는 있을 수 있으나 희생자들의 영웅적행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피흘리고 땀흘린 그 많은 장병, 기술자, 그 가족들을 위해 「우리의 베트남」은 착실히 정리돼야겠고 온전한 기록으로 남겨질 필요가 있다.【편집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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