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체제가 무너진뒤 새로운 세계질서가 자리잡기 위한 움직임이 날로 활발해지고 있다. 이념투쟁을 대신해서 경제전쟁이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는 지역별 블록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역블록화의 선두주자인 유럽공동시장(EC)은 경제공동체로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 통합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라는 역내경제협력체의 결성을 서두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지역국가들도 지금 무역과 투자의 자유지대화를 외치며 기존의 아태경제협의회(APEC)의 강화책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오는 17일부터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각료회담과 정상회담이 중대한 계기가 될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15개 회원국은 물론 전세계의 이목이 시애틀로 쏠리고 있다.
EC나 NAFTA, 그리고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제창하고 있는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에 비하면 APEC은 회원국간의 동질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면적은 전세계의 25%, 인구는 40%, 총 GDP(국내총생산)는 50%, 총교역량은 40%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최대의 지역기구이다. 그러나 결속력은 그만큼 허술한게 사실이다. 역사 정치 문화 언어 종교등 어느것 하나 동일한게 없고 제각기 다르다.
그리고 또 APEC을 보는 시각이 각 회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다. 우선 ASEAN6개국과 비ASEAN국가들간의 견해차가 심하다.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등은 이번 5차회담을 계기로 APEC을 내실있는 역내기구로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국제문제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ASEAN은 부정적이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이번 정상회담에 불참할 정도로 노골적인 반발을 보이고 있다. 같은 ASEAN소속이지만 인도네시아는 APEC의 강화에 찬성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입장은 일단 참여해서 관망하는 쪽이다.
각국의 사정이 이처럼 얽히고 설킨것이 바로 APEC의 복잡한 오늘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89년 호주에서 처음 시동되던 당시에 비하면 놀랄만한 급성장을 이룬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만 해도 1년전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한것이었다. 따라서 개방적인 역내경제공동체로 가는 길이 험난하긴 해도 불가능한것은 아니다. 각국의 외교적 노력에 달린것이다.
한국은 호주와 함께 APEC의 창설을 처음 주창한 뒤부터 줄곧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3차인 서울 각료회의에서는 의장국으로서 중국 대만 홍콩을 가입시켰다.
그리고 APEC회원국들과의 경제협력은 교역의 70%, 직접투자와 기술협력의 80%에 달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APEC 강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할 판이다.
한국은 선진개발도상국으로서 역내 선후진국간의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또 지역적으로도 태평양 량안의 국가들을 잇는 교량역으로서도 활약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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