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장 블레이크섬 배타고 40분/토론 기록않고 간략한 브리핑만 오는 20일 개최될 APEC지도자회의는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가 조망된다는 내용상의 의미뿐만 아니라 회의장의 모습과 회의진행방식에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될것이다. 특이한 분위기, 기발한 토론방식에 따라 진행될 아태지도자들의 회의장에 미리 들어가 본다.
오는 20일 토요일. 미국의 북서부 시애틀시앞의 길다란 만속에 위치한 블레이크섬. 워싱턴주 주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이곳에 아태 11개국의 정상들과 4개국 대표들이 모여든다. 시애틀에서 40분정도의 뱃길을 따라가면 섬에 도착하며 선착장에서 5분정도 걷다보면 회의장인 「틸리쿰 빌리지」에 도착한다.
빌리지의 중앙에 마련된 회의장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벽면의 통나무가 그대로 드러나 툭 터놓고 얘기하기엔 안성맞춤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상오9시 정각. 각국 정상들은 혹은 점퍼차림으로 혹은 털옷차림으로 둥그렇게 앉는다. 물론 상석도 없고 뒷자리도 없다. 중앙의 원탁도 없이 제각각 편안한 자세로 둥그렇게 자리를 잡자 클린턴대통령이 먼저 김영삼대통령을 소개한다. 김대통령은 제일 먼저 발언권을 얻어 「개혁과 변화」를 내용으로 한 발제성격의 연설을 한다. 김대통령이 발제연설을 하는것이 이번 회의의 유일한 「사전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의 연설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동시통역된다. 회의장 옆방에 마련된 통역실에는 한국어와 일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영어등 5개국어의 동시통역을 위한 완벽한 준비가 돼 있다. 브루나이는 영어를 쓰지않지만 참석한 볼키아국왕이 영국에 오랫동안 유학, 아예 영어를 쓰기로 했기때문이다.
김대통령의 첫발언이 끝나면 이제부터는 완전한 자유토론이다. 클린턴대통령의 제의에 따라 각국 정상들은 겉옷을 벗어젖히기도 하고 일부는 다리를 꼬거나 의자에 기대면서 최대한의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손을 든 인사를 향해 클린턴대통령이 지명을 하면 앉은 자리에서 음료수를 마셔가며 얘기를 꺼낸다.
클린턴대통령은 자신이 회의주최국의 지도자로서 「발언지명권」을 갖는것이어서 사회자도 아니며 회의 진행자도 아닌 단순한 「토론의 보조자」임을 강조해가며 골고루 발언권을 준다.
낮 12시가 넘으면서 자연스런 오찬. 회의장 옆방에 마련된 오찬장의 메뉴는 블레이크섬의 상징인 연어구이가 주종을 이루는 뷔페. 연어구이는 옛 시애틀주변의 인디언들이 즐겨 먹던 별식으로 60년대부터 이곳이 본격적인 관광지로 부상되면서 유명해졌다.
식사가 끝나면 다시 토론장으로 옮겨가고 지도자들의 토론은 중단이 없다. 예정된 회의종료시간은 하오 3시30분. 오찬시간을 포함해 6시간 30분동안 진행된 이날의 회의내용은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않는다는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이같은 「무기록성」이 이날 회담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게 될것이다. 다만 회의종료후 클린턴대통령이 토론내용을 언론에 간략히 브리핑할 계획이다.
하오4시께 틸리쿰 빌리지를 떠나는 아태지도자들은 모두가 난생처음 가져보는 독특한 모임의 의미가 상상외로 컸다는 인식을 갖게될것이다. 갈등의 구시대는 북태평양의 일몰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었다. 【정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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