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까지 학문 현장서 열정 14일 타계한 삼불 김원롱 서울대 명예교수는 불모에 가깝던 우리나라 고고학과 한국미술사의 기틀을 마련한 고고학계의 거목이자 만년까지 학문의 현장을 지키려 했던 투철한 학자였다. 서울대 교수로서 삼불은 흔히 연세대팀을 이끌었던 손보기현단국대 교수와 함께 「우리 고고학계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져 왔다.
옛무덤을 발굴해서 역사의 올바른 모습을 복원하는 그의 평생의 일은 47년 개성 근처 법당방 고려고분발굴부터 시작되어 석촌동 백제고분발굴(75, 84년), 전곡리 구석기 유적발굴(80∼83년)등으로 이어지면서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공적이 71년 공주 무녕왕릉발굴일것이다. 이 발굴로 국보급유물 1천여점이 빛을 보면서 찬란한 백제문화가 그 위용을 드러냈던것이다.
61년 서울대에 고고학과가 창설되면서부터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한국 고고학 개설」, 「신판 한국미술사」, 「한국고고학 연구」, 「한국미술사 연구」, 「KOREAN ART TREASURES」등 58권의 저서와 2백50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초인적 열정을 보였다.
그의 두드러진 학문적 업적은 무녕왕릉발굴과 함께 고고학의 편년체계로서 원삼국 개념을 정립시켰고, 전곡리에서는 아슐리안 계통의 타제석기를 발견함으로써 남한에 전기구석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힌 점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40대까지도 신춘문예를 꿈꾸었고 실제로 3권의 수필집을 펴냈으며, 틈틈이 배운 문인화 실력으로 91년 3월에는 고희기념으로 「삼불 문인화전」을 열기도 한 멋과 풍류의 인간이기도 했다.【박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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