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배가 자동차운전 공부를 하면서 본일을 얘기해 주었다. 대부분 중년이후인 여성들이 함께 교습을 받는동안 한 부인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는데,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어머니, 어머니』하면서 그를 극진히 모시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 청년은 가끔 자기차에 「어머니」를 태우고와서 날렵한 비서처럼 모시면서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자상하게 실기지도를 하곤 했다. 어느날 교습을 끝내고 차를 함께 마시다가 누군가가 그에게 『아드님이 어쩌면 그렇게 자상해요?』라고 칭찬하자 그는 『아들이 아니고 사위예요』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모든 여성들의 안색이 일시에 변했고, 그 부인이 사위와 함께 먼저 자리를 뜨자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저 아이의 어머니가 저 꼴을 봤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나는 아들이 있어도 저런 서비스를 못받아 봤어요. 아들애가 설혹 학원까지 데려다 준다고 해도 사양했을거예요.그런데 사위를 어떻게 여기까지 데리고 오지요?』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느라고 아들에게 심부름 한번 못시키고 키웠는데, 그 애도 이 다음에 제 장모님한테는 저러겠지요?』
『분해라. 죽자고 아들 공부시켜서 다른 여자들 좋은 일이나 시키겠네』
그 자리에서 「아들가진 어머니」들이 분개하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수 있다. 나의 한 친구는 딸만 둘인데도 그 얘기를 듣자 『요즘 사위들이 장인장모 모시는걸 보면 자기부모들에게도 그렇게 잘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자녀를 둘정도 두고 있는 요즘 부모들은 여러명의 자녀들에게 은근한 사랑을 쏟던 전세대와 다르다. 자녀사랑을 적극적으로 표시하고, 독점욕도 강하고, 물불안가리는 교육열로 자기가 자녀의 오늘을 만들어냈다는 의식이 잠재해 있다. 그래서 자녀를 독립된 존재로 떠나보내기가 힘들다.
딸이 시집가서 시부모를 극진히 모실때 친정부모도 상실감을 느끼겠지만, 시댁에 잘 적응해야한다는 염려가 섭섭함을 잊게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이 장인장모를 친부모보다 더 잘 모신다는것은 우리의 가족문화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는 옛말속에는 「처가에 잘하는 못난 사내」에 대한 은근한 비아냥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제 부모들은, 특히 어머니들은 마음을 바꿔야 한다. 아들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고, 결혼을 하여 그 부모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면, 그는 이미 「내 아들」만이 아니다. 그가 「좋은 남편, 좋은 사위」가 되어 결혼에 성공하기를 빌어야 한다. 자기자신이 남편에게 원하는바를 아들이 제 아내에게 하도록 가르치는 어머니가 가장 현명한 어머니다. 부모와 자녀가 정신적으로 독립한다는것은 쓰라린 이별을 뜻하는것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무슨 복에 딸만 두셨어요?』란 인사까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장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사위들이 늘어나고 있다. 좋은 현상이지만, 그들은 자기부모도 잊지말아야 할것이다. 아들의 어머니들은 울화를 누르고, 자신이 남편에게 원했던것을 떠올림으로써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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