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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 다비식지연… 사리 오늘공개/성철스님보낸 해인사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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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 다비식지연… 사리 오늘공개/성철스님보낸 해인사표정

입력
1993.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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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스님 먼 발치서 다비식모습 지켜봐/“백련암 뒷산서 두차례 빛줄기봤다”화제 ○…해인사는 11일 성철 큰스님의 사리수습을 예정보다 하루 늦춰 12일 상오10시께 시작하기로 했다.

 해인사는 당초 11일 정오께 습골하여 쇄골절차를 거친 뒤 수습되는 사리를 보도진에게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10일부터 계속 내린 가랑비로 다비장의 참나무장작 불씨가 11일 하오 늦게 소진되자습골시간을 늦췄다.

 해인사는 빗물이 스며드는것을 막기위해 이날 하오5시께 다비장 주위의 돔형식 철골구조물을 설치하고 흰색의 보호천을 씌웠는데 수습된 사리는 12일 정오께 보도진에 공개키로 했다.

 ○…해인사는 11일 하오 성철큰스님이 열반한 퇴설당에 보관하고 있던 스님의 유품을 보도진에 공개했다. 큰스님의 손때가 묻은 여러 유품들은 스님이 20년동안 쓰고다녔다는 삿갓모자 하나, 누더기 가사 한벌, 석장, 검정고무신 한켤레, 스님이 몇번이고 기워 신었다는 덧버선과 양말 한켤레, 수계첩, 50년대 통영군에서 발부한 도민증 2개, 52년 내무부 치안국에서 발행한 승려증등 20여점에 불과했다.

 성철스님은 67년 해인총림 초대방장에 추대된 뒤 25평인 퇴설당에서 기거하기 시작했으며 지난 26년간 이곳과 백련암을 오가며 정진해왔다.

 ○…성철큰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비구니 불필스님은 해인사측의 권고로 10일 열린 부친의 영결식장과 다비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해인사측은 불필스님에 쏠린 세간의 이목을 우려해 스님에게 『영결식장과 다비장에서 울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참석해도 좋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참석하지 않는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했는데 불필스님은 이를 받아들여 다비장이 내려다보이는 금강굴에서 다비식모습을 지켜본것으로 알려졌다.

 ○…해인사주지 법전스님이 성철큰스님의 법상좌로 공식추대됐다. 법전스님은 성철스님을 30년 가까이 모셔온 수좌로 성철스님이 생전에 맏상좌라고 주위에 밝힌 바 있다. 

 ○…성철큰스님의 입적당일인 4일밤과 다비식이 열린 10일밤 두차례에 걸쳐 스님이 주석했던 백련암 뒷산에서 한동안 몇줄기의 서기가 하늘을 향해 뻗어올라가는것을 일부 주민과 신도들이 목격, 화제가 되고 있다. 10일 하오8시 백련암과 마주보이는 해인사 일주문 부근에서 이같은 현상을 목격했다는 한 신도는 『성철큰스님의 법력이 높기 때문에 그러한 상서로운 방광현상이 나타난것 같다』고 말했으나 비슷한 시간에 같은 곳에 있던 지역주민들중에 방광현상을 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어 혼선을 빚기도 했다.【해인사=이기창·황상진기자】

◎사리 얼마나 나올까/“깨침 결정체”세인관심 집중/안나온적도 많아 구도척도 과신은 잘못

 사리는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깨침의 결정체로 인식되고 있다. 사리는 계(계율) 정(참선) 혜(지혜)의 삼학을 토대로 한 수행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그래서 큰스님이 입적할 경우 사리생성 여부가 불자들 뿐만아니라 세인의 관심사가 된다. 누구도 따르기 어려운 청정한 수행자의 길을 걸었던 성철스님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많은 큰스님들의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 60년대초 통합종단 출범이후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66년10월입적)은 34과의 사리를 남겼고 역시 종정을 지낸 청담스님(71년11월입적)에게선 8과의 사리가 나온 바 있다. 고승의 반열에 드는 구산스님(83년12월)은 54과, 탄허스님(83년6월 입적)과 자운스님(92년2월 입적)의 몸에서는 각각 13과와 19과가 수습됐다. 또 33인중 한 사람인 농성스님은 생전에 치아에서 사리 3과가 나와 몰래 버렸으나 고종의 상궁 하나가 이중 1과를 발견, 창경궁에 모셔놓고 기도를 올렸다는 말이 전한다. 흔치 않지만 청련화보살의 몸에서도 1과의 사리가 수습돼 화제가 됐었다. 

 사리가 깨침의 결정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불교사 특히 선종사를 보면 꼭 사리가 나와야만 큰스님이라는 척도는 없다. 국내에서는 80년대 이후 사리신앙이 변질되면서 깨침의 정도를 판단하는 잣대로 잘못 인식돼온 경향도 있었다. 그래서 맹목적인 사리숭배는 위험한 신앙이라며 다비를 하더라도 사리수습은 하지 말라고 유언한 고명한 스님들도 있다. 현대한국불교의 선사로 추앙받고 있는 전강스님, 혜암스님등이 바로 그러한 유언을 남겼다.

 사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유래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전신사리(또는 진신사리)라 하며 부처의 깨침의 말씀을 기록한 8만대장경은 법신사리라고도 부른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가 열반한 뒤 8섬4말의 사리가 수습됐다고 전하는데 당시의 도량크기는 오늘날과 다른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기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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