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먹고 안하고 안돌리고 “풍조”/“뛰면 다친다” 민원부서 더 위축/변혁기 단축 일할 분위기 시급 공무원들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87만 공직사회에 무사안일, 보신주의 병폐가 깊어가고 있다. 새 정부 출범후 한동안 긴장했던 공직사회가 이제는 일손을 놓은채 『뛰면 다친다』『소나기는 피해가자』는「동즉손」의 보신철학에 휩싸여 있다.
이미 6공때부터 관직의 권위에 대한 신망과 존경의 붕괴현상을 경험해온 공무원들은 새 정부의 개혁이 시작되면서 더 왜소해져 자리보전에 연연하는 처지가 됐고, 이에따라 60년대이후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고도성장을 입안·추진해온 주역이었던 테크너크랫들은 개혁의 추종세력이 돼가고 있다.
최근 공보처가 서울대행정대학원부설 한국행정연구소에 의뢰,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공무원들은 새 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해 ▲개혁목표(82.8%) ▲개혁속도(64.1%) ▲개혁방식(62.5%) ▲개혁결과(51.1%) 순으로 상당히 높은 지지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자리지키기와 시간때우기에 급급하다. 문민정부들어 간단한 민원서류 발급받기는 확실히 쉬워졌지만 책임이 따르는 업무는 잘 처리되지 않고 있다.「안먹고」(돈)「안하고」(일)「안돌리고」(민원서류) 라는 이른바 「3안」이 유행할 만큼 무사안일주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건축허가신청을 받고도 집단민원을 우려, 서류를 묵혀 두었다가 처리기한이 다가오면 신청인에게 취소토록 부탁한 뒤 다시 신청케 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버는 경우도 있다는것이다.
노른자위 보직이었던 행정기관의 위생·건축·청소분야 보직은 물론 경찰의 형사·교통분야 보직도 이제는 기피대상이다. 기본적인 현장확인, 감독업무도 겉핥기식에 그치거나 현장에 나가지 않고 전화로 처리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각종 감사에서 단골로 지적당하는 이른바 이권부서 공무원들은 차라리 무사안일로 징계를 받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행정의 결속력도 전과 달라졌다. 지난달 23일 범정부적으로 벌였던 국토대청결운동때 지방의 한 대도시는 참가숫자나 실적면에서 주민들이 낯을 붉힐 정도였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은『참여를 독려했다가는 동원이라고 욕을 먹을텐데 누가 나서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같은 공직분위기에 대해 상위·하위직을 막론하고 공무원들은 한 목소리로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사정과 감사를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내 모구청은 감사원종합감사를 비롯해 내무부, 시청예비감사, 행정감사, 구의회감사등 올들어 30여차례나 감사를 받았고 민원이 많은 건축·위생·청소업무 관련직원들 상당수가 징계회부되는 불명예까지 당해야 했다. 『솔직히 말해 엄동설한에 속옷바람으로 들판에 선 기분』이라고 요즘 처지를 비유한 한 간부공무원은『옷을 벗기든 입히든 빨리 재산 실사를 끝내 공직사회에 일을 찾아서 하는 새 바람이 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등 최고정책결정기관의 일선행정에 대한 과잉간여가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업무수행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많다. 서울시내 일선구청 공무원들은 쓰레기통 청소상태가 불량하다고 고위기관에서 전통으로 개선을 지시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창현교수(한양대 행정학과)는 『공직사회의 안정을 위해 사정작업은 정치권과 고위관리등 제한된 선에서 빨리 끝내는게 좋다』고 말했다. 조교수는 또 인적 개혁을 법적·제도적 개혁으로 방향을 바꾸고 공무원신분을 보장할 것과 정부조직개편, 공무원처우개선, 인사원칙등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달곤교수(서울대행정대학원)는 『공직사회에 무사안일 풍조가 만연한 것은 고위직의 경우 재산공개결과가 나오지 않은데다 조직개편설까지 꾸준히 나돌아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하위직은 승진 보수등에 불만이 누적된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변혁기를 단축하는 한편 감사방법도 법령위배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현장감사를 통해 문제법령을 개폐, 행정시스템이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을 안심하고 다시 뛰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박진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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