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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님(장명수 칼럼: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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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님(장명수 칼럼:1604)

입력
199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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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81세로 입적한 불교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의 7일장을 지켜보면서 느낀것은 「큰 인물」에 대한 우리사회의 목마름이다. 조계종단장으로 해인사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는 국장못지않은 관심을 모았고, 한 훌륭했던 구도자를 보내는 애도가 종교를 초월하여 온나라에 물결쳤다. 성철스님은 불교를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 친밀감을 주기보다 우람하고 괴팍하다는 인상을 남겼던 분이다.81년 1월 그가 종정에 취임하면서 세상에 던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는 스님의 거친 육성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지만 스님은 그 난해한 법어를 설명해주지 않았다.그래서 그 말은 뜻을 알듯말듯한 유행어가 되어 오늘도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기자들에게 성철스님은 특히 어려운 취재대상이었다. 스님은 『나를 만나려거든 먼저 부처님께 3천배를 드리고 오라』는 까다로운 주문으로 해인사까지 찾아간 기자들의 인터뷰요청을 물리치곤했다. 그를 만나는데 성공한 기자도 있었지만 어떤 질문도 난해한 그의 법어를 뚫고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에 비해서 그는 대중과 가깝지 못했고 가까워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열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존경과 애도를 보냈다. 부드러운 설법을 들려준적도 없고, 만나본적도 없는 그를 사람들은 「큰 스님」으로 느꼈다. 구도를 위한 스님의 수행정진이 얼마나 처절했는가를 뒤늦게 들으면서 사람들은 감동을 느꼈다.

 1912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 아랫마을에서 태어나 23살에 출가할때 그에겐 아내와 딸이 있었다. 그 무정한 아버지는 딸에게 불필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불문에 든 후 그가 행한 득도의 싸움은 치열했다. 그는 한번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10년, 말하지 않는 묵언10년, 생식 16년등으로 수행자들에게 신화를 남겼다고 한다. 그를 따르는 제자와 신도들은 누더기 장삼을 걸치고 무소유 이타행의 생을 보낸 그를 생불이라고 불렀다.

 「필요없다」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고 떠난 무정한 아버지를 따라 입산한 불필스님이 성철스님의 마지막 날들을 보살펴드렸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성철스님을 추모하는 글에서 『…스님이 기거하던 방에 산비둘기 한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나자 비둘기가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았다… 엄하고 무섭다고 알려진 스님에겐 어린애같은 모습이 있었다』고 쓰고 있다. 성철스님을 모셔온 일타스님은 『다소 변덕스러우면서도 영웅기질이 있던 분』이라고 스님을 회고했다. 그들은 우람한 바위같던 큰 스님의 내면을 따듯하게 전해준다.

 성철스님은 10일 해인사에서 거행된 다비식을 통해 육신의 옷을 벗었다. 처절한 수행을 통해 그가 얻은 진리는 이제 우리 모두의 것으로 남겨졌다. 스님을 보내면서 우리가 새삼 느끼는것은 여러분야에서 생애를 걸고 정진하는 「큰 인물」을 보고 싶다는 갈망과 아쉬움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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