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은 지난6일부터 7일까지 경주를 방문한 호소카와 모리히로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한일 양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이래 처음 가진 정상간의 만남으로서 「새로운 한국」과 「새로운 일본」이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획을 그은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첫째, 이번 회담은 실무방문의 형태를 통하여 격식없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져 앞으로 양국 정상간의 원활한 대화를 정착해 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인접국의 정상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상호관심사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는것은 구미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로 한일간에도 조속히 정착되는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한일 두나라의 국민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하여 양국의 국제화되는 모습과 새로운 지도자상을 확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둘째, 이번 회담이 천년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우리의 고도 경주에서 개최된것은 한일관계사에 있어서 단절되었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시켜 자연스러운 선린관계로 발전시키는 새로운 출발점을 상징하는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일 양국은 15년에 걸친 힘든 교섭 끝에 어렵게 국교정상화를 하였고, 그후 30여년에 걸친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를 통하여 상호의존도가 다른 어느 인접국관계보다도 긴밀하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했던 과거의 앙금으로 인하여 진정한 마음의 교류가 정체되어 왔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에서 개혁과 변화의 물결이 일고 주변정세도 탈냉전으로 안정성과 투명성을 상실하게 됨에 따라 양국 국민은 과거, 현재, 미래를 조화롭게 볼 수 있는 예지와 혜안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호소카와총리가 과거 식민지지배에 대하여 솔직하게 반성과 진사를 표명하고 김대통령이 우리도 과거는 잊지말되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것은 한일 양국민의 마음의 화해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으로 역사에 기록되리라고 본다. 이제부터 우리가 현재와 미래의 일본을 보다 객관적시각을 가지고 보려 하고, 일본국민이 과거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양국관계의 미래를 가꾸어 가려고 한다면, 한일관계는 호혜적이고 안정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것이다. 동북아지역과 나아가 아·태지역이라는 넓은 틀속에서 볼때, 한일관계는 결코 영합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상호이익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셋째, 양국 정상은 한일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내실화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정치적 의지를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도 한일관계의 장래에 밝은 전망을 열어주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호혜적이고 균형적인 경제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이달초 양국정상에 제출된 「한일경제인포럼」보고서를 성실히 이행해 가기로 합의하였으며, 구체적 방안으로 한일신경제협력관계를 포괄적으로 협의하기 위한 협의체를 만들기로 하였다. 우리는 만성적인 대일무역적자해소를 위하여 대일수출증대를 통하여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고 일본의 대한투자와 기술이전을 원활하게 하도록 외국인투자환경을 정비하는 한편, 일본은 각종 대한무역장벽을 해소하고 우리의 일본건설시장진출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또한 양국정상이 양국 국민간의 교류를 더욱 확대하고 질적으로 높여 가자는데 인식의 일치를 본 것도 한일관계의 저변을 확대해 가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한일양국민이 교류를 통하여 상호이해와 신뢰를 증진하게 되면 인접국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을 원만하게 해결해 가는데 커다란 힘이 될것이다. 특히 호소카와총리가 한국유학생의 확대조치등 양국관계의 장래를 짊어질 청소년 교류에 깊은 관심을 보인것은 특기할만하다.
끝으로 이번 회담은 한일관계를 양자관계의 차원을 넘어 동북아지역과 아·태지역까지 시야에 넣은 지역적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모멘텀을 제공하였다. 양국정상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북한핵문제의 조기해결에 공동대처하고 북한의 개방을 위하여 일·북한 수교교섭문제를 포함하여 상호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또한 APEC이 아·태지역협력의 구심체가 되도록 시애틀에서 개최되는 APEC지도자회의에서 긴밀히 협의하고 러시아의 동해핵폐기물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한·일·러 3개국간의 공동조사에 합의함으로써 한일협력관계를 지역적 차원으로까지 확대시키는 새 지평을 열었다.
이제 한일 양국은 탈냉전이후의 험난한 파도를 함께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이웃이라는 새로운 인식으로 상대방을 대하여야 한다는 점을 이번 정상회담은 매우 극명하게 양국 국민에게 제시하였다. 한일 양국은 서로의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로 호혜와 정의의 선린국관계를 쌓아가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힘을 모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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