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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한 행위(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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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한 행위(장명수 칼럼)

입력
1993.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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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는 한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경주에서 만난 두나라 정상들이 티셔츠나 스웨터차림으로 한일양국의 현안을 이야기하고, 옥외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는등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비록 서양냄새가 나긴 했으나, 두나라의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55세의 호소카와 총리는 노회한 노정객들이 지배하는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일본인들사이에 「젊은 스타」로 부상하여 인기를 모으고있다. 그는 솔직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호소카와 스타일」로 일본정치를 바꿔가고있다. 그가 이번에 한일양국의 과거에대해 사과하는 방식도 호소카와식이었다.

 그는 6일 정상회담과 만찬답사에서, 7일 공동기자회견에서 과거 일본의 식민통치를 사과했다. 그는『우리나라에 의한 식민지 지배로 한반도의 사람들이 모국어교육의 기회를 빼앗기고, 자기이름을 개명당하는등 참으로 여러형태의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겪으신데 대해 그 비도한 행위를 깊이 반성하며 마음으로부터 진사드린다』고 말하고 「국제관계속의 일한관계」를 추구해 나가자고 말했다. 그의 사과는 역대 일본총리나 일왕의 사과에 비해 강도가 더 세지는 않지만, 핵심을 피하지않는 깨끗함이 보인다.

 일본측이 기자들에게 배포했던 만찬답사에는 「오와비」라는 말을 지우고 「진사」로 고쳐쓴 흔적이 보였는데, 「오와비」란 사과와 사죄의 중간정도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한다. 「진사」역시 비슷한 정도의 사과인데, 굳이 이 단어로 고친것은 보다 정중한, 그러면서 보다 덜 직선적인 어감을 고려한것 같다. 이정도 사과는 90년이후 가이후총리와 미야자와총리의 입에서도 이미 나온적이 있다.

 『한일양국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는것은 유감』(83년 나카소네총리, 84년 히로히토일왕), 『우리나라가 귀국국민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끼쳤다는 잘못에 대해 엄숙히 계심하려고 결의하고 있음을 표명하고자 한다』(84년 나카소네총리),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90년 아키히도 일왕)는 등 일본은 한일양국의 정상들이 만날때마다 구차한 사과의 뜻을 표하곤 했다. 그러다가 90년5월 노태우대통령이 방일했을때 가이후총리는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드린다』고 말했고, 92년1월 서울에온 미야자와총리는 『…다시한번 반성과 사과의 뜻을 말씀드린다』고 보다 직접적인 사과를 했다. 그러나 「불행한 역사」가 무엇이였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호소카와의 사과는 과거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것을 「비도한 행위」라고 못박았다는점에서 「일본의 한계」를 깨고 세계의 질서속으로 나왔다는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솔직히 밝히지 않고, 이리저리 말을 돌려 핵심을 피하고, 역사를 왜곡하여 후손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가르치지 않는것이야말로 일본이 진정으로 국제화 할 수 없는 한계였고, 다시 「비도한 행위」를 보태는 죄악이었다. 

 일본은 이제야 비도에서 도로 나왔다. 호소카와의 사과는 한국인들의 기분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자신을 위해 중요한 일을 했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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