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지,83년 미서 출간 「안에…」/공산당 입당·투옥 등 35년 역정/모택동·주은래 등 평가도 담아 중국의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는 최근 서평란에서 10년전인 83년에 미국 뉴욕에서 출판된 책을 한권 소개했다.
「안에 머물렀던 사람」(THE MAN WHO STAYED BEHIND)이란 제목의 이 책은 일본 패망직전인 45년 중국 공산당에 참여, 80년 미국귀환때까지 35년간 중국에 머무르면서 중국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체험한 한 미국인의 자서전이다. 시드니 리텐버그라는 미국인의 자선전을 이 시점에 새삼 소개하는것은 이달 중순의 미중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이 중국과 미국간의 상호이해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것이다.
차이나 데일리는 에필로그에서 모택동과 주은래에 대한 리텐버그의 평가는 이 두 역사적 인물의 장단점에 대한 지금까지의 수많은 평가중 가장 뛰어난것중의 하나라고까지 극찬했다.
그는 자신을 『중국을 무척 사랑했으나 현명하게 사랑할줄 몰랐던』 인물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이 짧은 말속에는 35년간의 중국체재중 16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했던 그의 파란많은 역정에 대한 회한이 담겨있다.
46년 운남성 곤명에 주둔한 미군의 중국어 통역관이었던 리텐버그가 중국에 남기로 결정한 계기는 미군 군용트럭에 으깨진채 숨진 한 농촌 소녀의 불행때문이었다. 목선이라는 이 소녀를 친 미국병사는 사고당시 술에 취해 있었으며 사람을 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재미」삼아 그대로 차를 몰았다는것이다. 이 사건의 조사에 참여한 리텐버그는 죽은 소녀의 가족에게 많은 보상을 받도록 노력했으나 그 보상비는 단돈 26달러였다.
잔인함과 불공정에 분노한 이 젊은 이상주의자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중국에 남아 중국을 돕기로 결심했다. 손문의 미망인 송경령여사의 조언에 따라 유엔구호기구의 옵서버로 상해에서 활약하면 그는 장가구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고 연안으로 갔다. 연안에서 그는 신화사통신사의 고문으로 활약하면서 모택동 주덕 주은래등 중국의 혁명지도자들과 이웃하며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냉전의 시작은 그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49년 북경에서 그는 미국의 스파이로 체포되고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6년동안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다. 출감한 뒤 그는 갓 출범한 「공산중국」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였다.
66년의 문화대혁명과 관련, 그는 이 자기 파괴적인 정치적 열정에 잘못 인도되어 권력투쟁에 깊숙이 휘말려들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에 열광했던 그 역시 69년 감옥에 수감됐으며 4인방이 축출될 때까지 무려 10년간을 독방에서 지내야 했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한해 뒤인 80년 그는 중국인 처와 그 사이에 난 4명의 자녀와 함께 미국으로 왔다.
92년 리텐버그는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복권되었으나 35년의 중국 체재기간 16년간을 감옥속에 있었던 그 사실은 지워질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중국체재에 대해, 심지어 감옥에서 보냈던 기간마저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차이나 데일리지는 사랑과 증오, 헌신과 실망, 희망과 공포로 수놓아진 리텐버그의 자서전 내용을 소개하면서 『만일 그가 자기가 주장한대로 중국을 무척 사랑했다면, 그는 분명 현명치 못하게 중국을 사랑한것은 아닐것이다』라며 서평의 매듭을 짓고 있다.【북경=유동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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