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제교·홍예문 구총독부 자리 환원/공예관등 철거… 왕궁박물관 건립도 정부는 5일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결정, 발표했다. 이에 따라 97년까지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복원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된다.
경복궁 복원사업은 90년부터 시작됐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전 문제와 맞물려 완전 복원이 어렵다고 예상돼왔다. 그러다 김영삼 문민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일제 강점을 상징하는 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결정해 경복궁은 훼손된지 89년만에 조선왕조 정궁의 위엄을 회복하게 됐다.
구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면 그 자리엔 본래대로 영제교와 홍예문이 세워진다. 홍례문은 광화문을 지나면 마주치는 첫번째 문이다. 이 문을 거쳐 영제교를 건너서 근정전에 이른다. 홍례문은 일제가 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헐었다. 영제교는 경복궁 안 전통공예관 옆에 이전돼 있다. 홍례문과 영제교는 조선초기에 건립됐으나 파괴돼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재건됐다.
경복궁 복원 사업에는 일제가 경복궁내에 제멋대로 세웠던 미술관의 철거도 포함된다. 이 건물은 지금 전통공예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이와 함께 청와대를 경비하던 30경비단도 빠른 시일 내에 철수한다.
경복궁은 원래 조선 태조가 1394년 10월 한양을 왕조의 도성으로 삼으면서 이해 12월 4일 개토를 시작, 이듬해 9월 완공을 보았다. 경복궁의 중심부는 전통적인 궁실 건축에 따랐으나 새로운 변형을 시도하여 고유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음양오행과 천문사상이 궁궐 건축에 응용된 대표적인 왕궁으로 삼국이나 고려의 궁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건물 배치가 특징이다.
풍수지리로 보면 북악은 현무, 인왕은 백호, 낙산은 청롱, 남산은 주작이 되어 경복궁은 좌청롱 우백호를 거느린 명당의 지세라고 한다. 세종대에 경복궁의 풍수지리를 놓고 조정에서 열띤 논의가 일었지만 한양에 이 보다 더 좋은 지세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도 학계 일각에서는 풍수지리학의 근거를 들어 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경복궁 안 근정전 내원에 들어선 이 건물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세웠다고 지적됐다. 즉 총독부 건물은 북악과 남산을 잇는 근정전과 광화문의 중앙 선상에 세웠다는 것이다. 그후 일제가 민족의 기맥을 자르기 위해 전국의 명산 정상에 쇠말뚝을 박아 놓은 사실이 발견돼 그러한 주장이 뒷받침됐다.
특히 위에서 내려다 보면 총독부 건물은 「일」자, 현재의 서울시청 건물은 「본」자 형태를 이루고 있어 청와대 뒤편 북악산의 「대」자형태와 더불어 「대일본」의 형상을 띠게 된다.
일제는 1910년 이후 경복궁 파괴를 정책적으로 단행, 수많은 내전 건물을 헐어버리고 제멋대로 새 건물을 지었다. 1915년 동문인 건춘문 내원에 미술관을 짓고 뒤에 총독부박물관으로 사용했다. 1926년에는 근정전 앞뜰 양편에 늘어선 회랑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총독부를 세웠다. 1940년에는 건청궁을 없애고 얼마전까지 민속박물관으로 사용된 건물을 세웠다. 건청궁은 1873년(고종 10년)5월 북쪽 후원 안에 지은 건물로 임금의 어진이나 사진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이번 정부의 결단은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씻어내게 됐다는 의미도 크지만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온전히 복원한다는 데서 그 의의가 깊다.<글 이기창기자·사진 이기룡기자>글 이기창기자·사진 이기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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