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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사과」서 「자발적 진사」로/일「과거사 사과」어떻게 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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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사과」서 「자발적 진사」로/일「과거사 사과」어떻게 해왔나

입력
1993.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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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못한 유감발언」 탈피 “의미” 「과거사 문제」를 놓고 한일간에는 해방이후 적지않은 말의 공방을 주고 받았다.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간의 이러한 대치는 호소카와(세천) 일본총리의 6일 경주 「진사발언」으로 과거를 매듭짓는 단계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양국의 새 정치파트너로 등장한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는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문제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리고 이 평가를 미래지향의 기초로 삼기위한 출발점으로 삼기로 합의했다.

 특히 이날 호소카와총리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솔직한 표현으로 「사죄」해 과거의 일본지도자와는 다른 자세를 보였다. 호소카와총리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 자행했던 「잘못」을 사례를 들어가며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깊이 반성하며 진사한다』고 분명히 했다.

 이날 호소카와총리의 사과와 이에대한 김대통령의 수용으로 이뤄진 한일정상간의 과거사문제에 대한 화해는 앞으로 이와관련된 적지 않은 후속조치들을 남겨두고 있지만 일단 그 자체적 평가로서도 충분한 의미를 갖고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끊임없이 제기돼온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와 이에 대한 우리 정부나 국민들의 반응을 새겨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한일과거사문제에대한 일본정부의 첫 공식 반응은 「찔러서 절을 받아내는」모양이었으며 그것도「반쯤 하다가 마는」모습이었다. 65년 2월 20일 한일회담공동선언은『한국의 이동원외무장관은 과거 어떤 기간에 걸쳐 양국간에 있었던 불행한 관계에서 연유하는 한국국민의 대일감정을 설명했고 시이나외무장관은「이장관의 설명에 유념하고 유감의 뜻을 표명하였으며 깊이 반성하는 바」라고 말했다』는것이었다. 문자그대로「불행한 과거라고 하니 유감을 표하겠다」는 식이었던것이다.

 이후 한일간의 과거사문제에 대한 언급은 한국내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금단의 영역으로 넘어갔고 이같은 상황은 80년대까지 계속됐다.

 제5공화국을 연 전두환대통령은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한국대통령의 첫 일본방문을 계획하게 됐고 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일총리의 방한이 이뤄졌다. 83년 1월 방한한 나카소네총리는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것은 사실로서 우리는 이를 엄숙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불행한 역사」정도의 시인이 있었다. 이듬해 전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히로히토일왕은 「과거사」이후 처음으로 자국을 방문한 피해국의 대통령에게『불행한 역사가 있었던것은 유감이며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당위론」만을 언급, 우리국민의 반발을 샀다. 히로히토일왕은 「과거사」 당시의 일본국가 원수였던것이다.

 또 당시 나카소네총리도『유감이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함으로써 한일간의 과거사문제는 언급되면 될수록 반일감정만 더욱 깊게 하는 뜨거운 감자였다.

 90년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때 아키히토일왕은 『한국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하고 통석의 염을 금할수 없다』고 했으며 이같은 일본의 태도에 대해 우리국민들이야말로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던것이었다.

 이후 우리국내에서 종군위안부문제를 중심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간에 새로운 전선이 형성될 정도로 반일감정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일본내에서까지 「스스로의 가해에 대한 증언과 증거」들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지난해 1월 방한한 미야자와총리는 과거의 고통이 『일본의 행위로 말미암아 생긴것』임을 시인하면서『귀국 국민께 반성과 사과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65년 시이나외무장관의 언급에서부터 지난해 미야자와총리의「사과의 뜻」에 이르기까지 그 발언들은 한국의 요구에 의해, 최소한 우리와의 협의를 거쳐 끌어낸 것이라는데서 그 한계가 있던것이었다. 호소카와총리의 과거사발언을 우리정부가「지극히 성의있는 사과」로 받아들이고 김대통령이 이를 수용한것은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는것이다. 

 호소카와총리의 이날 발언은 우리의 요구나 정부간의 협상의 산물이 아니라 일본정치의 신세대가 적극적인 미래를 위해 스스로 일궈낸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사과」라는 점에서 양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것이다.【경주=정병진기자】

◎65년이후 대한사과 발언록

 ▲시이나외무장관(65·2·20·한일회담)=양국의 불행한 관계에서 연유하는 한국국민의 대일감정에 유념하고 이에대해 유감을 표하며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

 ▲나카소네총리(83·1·11·방한만찬답사)=과거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서 우리는 이것을 엄숙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히로히토일왕(84·9·6·전두환대통령방일만찬사)=우리는 귀국과의 교류에 의해 많은것을 배웠다.그런데도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서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것은 유감이며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카소네총리(84·9·7·전대통령방일오찬사)=우리의 잘못에 깊은 유감을 새기고 장래에 이런일이 없도록 굳게 결의하고있다.

 ▲나카야마외무장관(90·4·30·한일외무장관회담)=2차대전은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전쟁이었다. 한국국민의 심중에 응어리가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위해 반성해야 한다.

 ▲아키히토일왕(90·5·24·노태우대통령방일만찬사)=귀국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통석의 염을 금할수 없다.

 ▲가이후총리(90·5·24·노대통령과 정상회담)=우리의 행위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한다.

 ▲가이후총리(91·1·9·방한만찬답사)=과거를 잊지 않고 그 반성을 현재에 살림으로써 미래를 향한 시야가 열릴것이다.

 ▲미야자와총리(92·1·16·방한만찬답사)=일본은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않도록 해야 할것이며 총리로서 다시 귀국국민께 반성과 사과의 뜻을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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