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땅·저리금융 외국손짓 매력/국내탈출 러시… 산업공동화 가속 현대자동차가 캐나다공장을 지을 때 땅값은 1캐나다달러가 들었다. 48만여평 땅값이 모두쳐서 단 돈 6백20원. 퀘벡주 정부는 85년 계약당시 파격적인 땅값에다 2억달러어치가 넘는 건물·설비의 장기임대까지 해주었다.
삼성중공업이 최근 상용차공장을 세우기로 한 대구 성서공단의 땅값은 평당 60만원선. 25만평만 잡아도 토지에 묶이는 돈이 1천5백억원에 달하게 된다. 5천대규모의 생산라인 설비투자를 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7백억원을 조금 웃돈다. 배보다 배꼽이, 설비보다 땅값이 더 들어가는 것이다. 비싼 금리를 물어가며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삼성은 고민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의 사례는 금리 땅값 임금등 기본 생산요소비용이 너무 비싸 기업이 투자를 하기 어려운 사정과 요소비용이 싸서 투자를 하기 쉬운 사정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비용」구조는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억누르고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를 원천적으로 가로 막는 핵심적인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고비용구조」가 완전히 틀을 잡기 시작한 89년이후 국내 업체들은 투자 불모지가 돼버린 모국을 탈출, 보다 나은 투자여건을 찾아 잇따라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국내에 있던 외국업체들도 대거 철수중이고 새로 진출하려는 업체들은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고사하고 투자자체가 되기 어려운 제조업의 불모지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은 무역장벽을 피해 해외 곳곳에 현지 법인을 세우는 국제화 전략이다. 따지고 보면 국내의 「고비용」구조를 피해 더 좋은 투자조건을 제공하는 외국으로 옮겨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시도에 다름아니다.
대우전자 영국 프랑스공장의 땅값은 대부분 공짜다. 고용만 늘릴 수 있으면 기업주나 자본의 국적이 어딘들 개의치않는 유럽국가들은 투자비의 절반을 융자해 주는가 하면 종업원 한명당 수백달러씩의 인건비 보조도 서슴지 않는다. 대우가 해외법인 설립을 위해 발행한 해외전환사채(CB) 의 표면금리는 고작 연 2∼3%다. 두자리수로 굳은 국내 고금리와는 비교도 안 된다. 이러니 대우가 국내에서 투자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업들의 해외탈출 움직임은 대기업들뿐 아니라 중소업체들사이에서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첨단분야라 할 전기전자업종에서 지난해 40개의 중소업체가 공장설비를 걷어 외국으로 빠져 나갔다. 섬유등 노동집약업종이 싼 임금을 찾아 「도피성」해외투자 러시를 일으킨지는 벌써 오래다. 그나마 아직 국제경쟁력이 있다는 전기전자업조차 산업 공동화현상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제조업 설비투자가 1년전보다 되레 감소했고 올해도 연거푸 마이너스를 기록할 전망이다. 최근 수년간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조원씩 자금을 퍼붓는 투자촉진책을 펼쳐왔다. 그런데도 정책효과는 고사하고 사상 초유의 2년연속 투자감소를 기록하게 될 형편이니 그동안 써온 정부시책이 얼마나 핵심을 벗어나 겉도는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캐나다 같은 나라들이 외국기업들에게 조차 공짜로 제공할 수 있는 땅을 우리는 왜 수천억원씩 받지 않을 수 없는 구조가 됐는지,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두고도 과연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고 세계시장에 나가 경쟁을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선진국들에서 조차 저리금융을 해주고 땅을 거저 주면서 사람만 써달라고 한다. 우리는 기업들에게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엄청난 땅값을 요구하고 사람도 많이 쓰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기술도 약하고 마케팅도 약하고 이름난 상표도 못갖고 있다. 그런 상태로 적자생존의 철저한 정글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해 살아남고 다른 나라 기업들과 싸워 이기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유석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