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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의 중생들은 어찌하시고…/성철 큰스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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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의 중생들은 어찌하시고…/성철 큰스님을 추모하며

입력
199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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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성철 큰 스님! 스님께서 돌연히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스님! 해인사 대중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불자와 이 민족을 그냥 버려두시고 소요자재하게 어디를 가셨나이까? 오실 때는 백운과 함께 오셨고, 또한 가시는 길에는 명월과 더불어 벗하신 스님께서야 얼마나 쾌활자재하시겠습니까! 스님의 분상에서는 별도로 태어나고 죽음이 없으시지만, 고통에 빠져있는 이 땅의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1912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삼계의 고해중생을 제도하고자 인도의 가비라국에 태어나실 때 도솔천 내원궁을 떠나지 않고 이미 왕궁에 태어나셨고, 성을 뛰어넘어 출가하기 이전에 벌써 중생 제도를 마치신 것과 같이, 스님께서도 1936년 사미계도 받기 전인 속인의 신분으로 산청 대원사 선방에서 삼조연하의 한자리를 차지할 때 이미 도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후 보임을 위해 동래 범어사, 통도사 백련암, 은해사 운부암, 금강산 마하연, 순천 송광사등 10년간의 장좌불와로 용맹정진 끝에 대구 동화사 선방에서 정진하시다가 활연히 대도를 깨달으시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으셨던 것입니다.

 황하의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가서 곤륜산 꼭대기에 높이 솟았네!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대지는 침몰하였네!

 한바탕 웃고 나서 뒤돌아보니

 청산은 옛과 같이 우뚝 서있네!

 그로부터 스님께서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돈오돈수인 조계종풍의 의천장검을 문 앞에 걸어놓고 침체된 한국 불교의 중흥과 선풍진작의 큰 원을 세우시고 청담, 자운, 향곡, 월산, 혜암, 법전스님들과 함께 특별 수행결사를 맺고 수행하던 중, 공비의 출몰로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그후 동래 관음사, 고성 문수암, 통영 안정사, 마산 성주사, 대구 파계사, 문경 김룡사등 선원에서 후배를 지도하시다가 1966년부터 해인사 백련암으로 석장을 옮기시고 연거하시던 중 1967년 해인총림 방장으로 추대되셨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스님께서는 20여 성상동안 해인총림과 종단의 상징적 지도자로서 얼마나 심려가 많으셨습니까? 1970년 제가 해인사 주지로 있을때 스님께서는 방장의 입장에서 당부하시길 『대중을 외호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여 대중을 시봉하되 대중을 마치 정원에 피어있는 꽃과 같이 아름답게 여기며 애호하여야만 한다』고 하신 그 말씀이 이미 24년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옵니다.

 스님의 분상에서야 어찌 오고 가며 나고 죽음이 있겠습니까! 십수년 전 오랜만에 스님의 생일을 알게된 상좌들이 스님께 생일떡을 만들어 드리려고 떡방아를 찧고 있을 때 이를 알게 된 스님께서는 방앗간으로 가셔서 모래 한 사발을 호박에 집어넣으시면서 『중은 생일도 없고 제삿날도 없는 것이다』라고 설파하셨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중생들이야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치 태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부러진 것 같사옵니다.

 스님! 이 나라 불교와 이 민족을 어찌하라고 스님 홀로 훨훨 떠나시었습니까? 스님께서 떠나신 가야산은 텅텅 비었으니 시냇물은 마르며 초목마저 그 빛을 잃은 듯 일월은 무색하며 새짐승은 울부짖고 대중은 호곡하고 있습니다. 스님 부디 열반세계에 오래 머무르지 마시고 하루속히 사바세계에 다시 오셔서 저희들과 이 민족을 불생불멸의 진여세계로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불기 2537년(1993)11월4일

 이지관 합장배(스님·전동국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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