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자연에대한 깊은 인식 엿보여/특유의 패러디는 여전히 곳곳에 대중문화에 물든 세태와 물신주의를 풍자하고 있는 시인 유하씨(30)가 세번째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민음사간)을 펴냈다.
무협지적 상상력과 통렬한 세태풍자로 시선을 끌었던 그는 「무림일기」「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 이은 새 시집에서 삶의 진정성과 자연에 대한 깊고 넉넉한 인식을 드러내는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소재의 발랄함에서 더 멀리 뛰어 전통적 정서로 나아가고 있거나, 혹은 서정시로 빠르게 복귀하는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루가 어두워지려 한다 출구를 자기 뒷모습에 두고 유리창에 팅팅 몸을 부딪는 날파리처럼 헤비메탈을 부르다 뽕짝으로 창법을 바꾸는 그런 삶을 살지 않으리라 간성 가는 길, 청간정에 앉아 저무는 동해를 본다 저 바다를 어찌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나무는 서 있고, 슬픈 육체여 지나온 사랑의 출렁거림 앞에서 난 아직도 망연자실하다…> (「세상의 모든 저녁 3」중에서) 또 하루가 어두워지려 한다>
그는 『내 시집들이 큰 호응을 받았던것은 그 시집들이 선정적인 대중문화의 일부분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권의 시집을 내고 난 뒤 센세이셔널리즘 속에 내 시가 파묻히는것이 아닌가라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번 시집이 독자들에겐 친숙한 서정시겠지만 내게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말했다.
그의 어법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폭력이 고민없이 횡행하고 있는 이 땅에서 홍콩영화는 하나의 종교성을 갖고 있다…상처받은 육신들이 속속 홍콩영화에 귀의하는, 저 인산인해의 장관을!> (「싸랑해요 밀키스, 혹은 주윤발논」중에서)이라고 말하던 압구정동의 시인은 <가을 햇살이 내어준 길을 따라가면 늙어가는 모든 것들이 눈물겹다 ……삶도, 목청껏 부르는 절망의 축제> (「가을 햇살 아래」중에서)라고 내면으로 파고드는 시를 선보이고 있다. 가을 햇살이 내어준 길을 따라가면> 폭력이 고민없이 횡행하고 있는 이 땅에서 홍콩영화는>
그러나, 그의 시의 가장 큰 강점으로 여겨지는 「패러디」는 지금도 시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다. 또한 대중문화에 깊이 젖어 있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진부할 지 모르지만 자연을 대하니까 정말 좋데요』
이 말은 시의 분위기가 바뀐 데 대한 설명이기도 할것이다. 그는『사람의 마음을 심도 있게 묘사할 수 있는 진실이 담긴 시를 쓰고 싶다. 다음 시집은 가능하면 외국에 가서 쓰고 싶고 소설을 쓰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재학중이며,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이현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