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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서둘러 헐어야할 대의(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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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서둘러 헐어야할 대의(사설)

입력
199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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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헐어버리고 뒤에 짓느냐, 먼저 짓고 뒤에 허느냐―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다시 논쟁의 초점이 되고있다. 다시 말해서 총독부건물의 철거,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논쟁이다. 이 문제가 다시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것은 지난 27일 5천1백73명이 서명한 공개서한이 청와대에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 공개서한은 먼저 새 박물관을 지어놓고, 총독부건물을 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맞서 구조선총독부철거추진위원회도 29일 총독부건물을 빨리 철거하라는 성명을 내놨다. 이 성명은 해마다 우리문화재 1천점이 해외순회전시회를 열고 있다는 점을 지적, 박물관소장 유물의 손상우려를 반박하고있다.

 논쟁이 재연됨으로써 총독부건물철거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상당한 압력을 느낄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정책이 여론의 참여를 통해 결정·집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논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과거 5공화국정권이 일방적으로 총독부건물에 수백억원을 퍼부어 국립중앙박물관을 옮긴것 같은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강조해둬야 할것은 이 문제가 3중복합의 과제라는 사실이다. 경복궁 복원, 총독부 철거,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전이 그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고려해야 할 요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리는 이처럼 복잡한 「선택」의 과정에서 대의명분이나 실리를 냉철하고 균형있게 저울질해야 된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먼저 총독부철거가 갑자기 거론된 문제가 아님을 지적해야 할것이다. 그것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에 의해 제기된 이래 40여년동안 꾸준히 논란돼온 숙제였다. 다만 우리의 경제력이 그에 미치지 못했고 군사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총독부가 「보존」됐을 뿐이다.

 둘째로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역사상 영원히 남을 만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지어야 한다는것이다. 위치선정과 설계에서부터 건축공사에 이르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그러자면 수년 또는 아마도 10년이상의 작업과정도 마다해서는 안될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시된 유물의 손상을 걱정해서 총독부건물을 허는것은 서두를 일이 아니라는 「실리론적」 주장이 걸린다. 광복 반세기가 넘도록 총독부건물을 놔둬야 하느냐 하는 문제다.

 물론 전시된 유물을 걱정하는 생각은 이해할만 하다. 박물관을 이리저리 옮기는 예는 세계에 없다는 비판도 귀담아 들어야할 지적이다.

 그러나 세계의 문명국가치고 전통왕궁이 이처럼 손상된채로 있는 예도 하늘아래 경복궁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더구나 이사짐을 꾸려야되는 유물은 12만점의 수장문화재 가운데 전시된 7천5백점이다. 경복궁 복원=총독부 철거가 대의명분을 위한것이라면 어떠한 실리와도 바꿀 수 없는 대의명분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허는것이 급하지 않다는 비판의 밑바닥에는 집권자의 공명심과 인기영합정책을 경계하는 정치적  시각도 있는것 같다. 물론 지난날 군사정권들의 행태에 비추어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총독부를 빨리 헐자는 결정이 인기영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다만 반세기 가깝게 미루어온 숙제를 푸는 작업일 뿐이다. 또 설혹 그것이 인기영합정책이라 하더라도, 그렇다고 반대할 수는 없다. 총독부를 헐어버려야될 필요와 명분은 그만큼 크고 엄중하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전문가들이 지적한것처럼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도 유물의 보존을 위해서는 적지않은 결함을 갖고있다. 어느모로 보나 우리의 선택은 총독부를 서둘러 허는쪽 외에 다른 선택은 생각하기 어렵다.

 민족의 상징적 기념물인 전통왕궁에 총독부가 온존해 있는 세계에 유례없는 상태―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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