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 조선 개항기 연구로 인연/유창한 우리말 독학으로 깨쳐 마르티나 도이힐러교수(57·런던대 한국학)는 『여권이란 측면만 놓고 본다면 현대 한국사회는 고려시대와 비슷한 양상으로 돌아가고 있는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 당시만 해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기 않았는데 조선시대 들어 유교문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부권위주의 사회로 변해갔다는 분석이다.
도이힐러교수가 이번에 제4회 위암학술상을 수상하게 된 저서 「한국의 유교화(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는 이러한 과정을 파헤친 역저이다. 원래 조선말 개항기를 연구했던 그는 73년부터 2년동안 서울대 규장각에서 자료수집과 연구를 하면서 조선의 유교사상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뒤 10년이 넘도록 집필을 계속했고 지난해에야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책을 펴냈다.
그는 한국사람들과는 꼭 우리말로 대화를 한다. 간혹 정확한 어휘선택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우리말을 더 잘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우리말을 체계적으로 배운것도 아니다.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필요성 때문에 한글을 독학했고 67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에 처음 오면서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1935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도이힐러교수는 15세때부터 동양의 고전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중국과 일본 고전을 전공했다.
그는 59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도교수였던 존 페어뱅크교수는 저명한 동양학자로 중국의 개항기에 대해 연구를 한 바 있다. 제자 도이힐러에게 그는 한국의 개항과정에 대해서도 연구해보라고 권유했다. 8년뒤 박사학위논문이 된 「한국 개항기 외교사(Confuclan Gentlemen and Babarian Envoys)」가 그 인연의 첫 결실이었다. 개인적 이야기를 꺼리는 그의 성격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사별한 그의 한국인 남편과는 이때 만난것으로 알려진다.
천착하는 분야가 유교철학이라서인지 그는 유교사상은 무조건 고루한것으로 치부하는 견해에 이의를 단다. 『한국사회에 미친 유교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것은 무리예요.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유교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유교가 친족관계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는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유럽한국학회 회장을 맡아왔던 그는 올봄에 이 자리를 내놓았다. 「공부 밖에 모르는」 그는 『너무 일이 많고 시간을 많이 뺏겨서 그만 두었다』고 말한다. 88년부터 런던대에서 한국사와 한국사상등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올 10월부터가 안식년이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에 편안한 휴식은 없는 모양이다. 내년부터 한 학기동안 한국에 머물 계획인 그는 이번에는 17, 18세기의 유교가 후기 조선사회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려는 의욕에 차있다.
28일 아침 뉴욕에서 돌아와 인터뷰에 응한 그는 이틀을 쉬고 다시 상을 받으러 서울로 간다. 유일한 직항편인 KAL기에 자리가 없다 하여 네덜란드의 KLM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긴 여행을 한다. 그리고 곧 돌아와 다시 연구에 몰두할 계획이다. 그렇게 공부에 바쁘게 사는 탓인지 57세의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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