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 “민생우선” 현실론 주도/“과거사 청산 방기” 당내 비판도 민주당의 현실적인 변화가 심심찮게 정가의 화제로 등장하고 있다. 과거 야당의 상투적 모습이었던 강경론 이상론 일변도의 태도가 수정되고 구체적이고 대안을 가진 비판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최근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이같은 당내의 「실용적」자세는 지난 9월 28일 이기택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과거사문제는 뒤로 미루더라도 정기국회에서는 시급한 민생현안에 치중하겠다』고 발언한 이후부터 감지돼 왔다.
실제로 이대표의 이같은 발언이후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은 굵직굵직한 과거사의 비리문제에 대해 슬쩍 건드려 보고 지나치는 대신 상임위별로 자잘한 현안들을 파고드는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또 금융실명제 대체입법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애초의 강경했던 이상론이 후퇴하고 『우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인식에 바탕한 현실론이 터를 잡기 시작한 것도 민주당의 실용적 조류를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29일 당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금융실명제 대체법안은 모든 금융거래자에게 부과하려던 실명의무를 「전산망을 갖춘 제금융기관」으로 축소했다. 또 3천만원 이상의 모든 금융거래를 대상으로 했던 국세청 통보의무를 「3천만원 이상의 모든 현금거래」로 한걸음 완화시켰다. 28일 상오의 당무회의에서는 아예 이것마저도 삭제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변화의 양상을 보다 분명히 한 것은 27일 이대표의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이었다. 이대표는 「21세기를 향한 선택」이라는 미래지향적 제목의 이 연설에서 김영삼정부의 정책전반을 혹독하게 비난하긴 했으나 정작 힘을 주어 강조한 대목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몇가지 제안이었다. 심지어 비판은 주제인 경제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방안을 받치기 위한 모양갖추기 차원이라는 느낌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민주당의 이같은 변신노력은 점차 국민들의 관심이 옳고 그름을 다투는 선악적 기준보다는 현실적 이해에 치중하는 시대조류를 따르려는 것으로 우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던 강경 비판기조가 더이상 국민의 공감을 끌 수 없다는 반성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실용주의조류에 대한 당내의 만만치 않은 비판을 고려할 때 민주당의 「변화」는 다분히 주도자인 이대표 개인의 당내, 혹은 대국민 이미지 부각을 모색하기위한 결과라는 시각도 병존하고 있다.
이대표의 본회의 대표연설과 관련, 비주류와 개혁세력은 일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의 비판은 이번 연설이 야당의 차별성을 상실하고 있다는데 집중됐다. 즉 야당은 어떻든 국민의 이해관심뿐만 아니라 도의적 관심을 걸머져야 하는데 실용적 관심에 치중해 사실상 야당 특유의 역할을 방기했다는 지적이다. 또 현실적으로 순수하게 실용적인 관점에서의 정책대결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결과가 뻔한 싸움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특히 『과거사의 진상이 규명되기만 하면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대목에 대해서는『이해당사자의 관용의지도 아니며 죄를 조사하기도 전에 사면을 선언하는 비논리적 발상』이라는 즉각적인 반박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반박은 28일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개혁모임소속인 장기욱 림채정의원이 과거청산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공직사퇴등 처벌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표면화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대표 스스로가 쉽지않은 발상의 전환을 하고 있다는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당의 색깔을 달리 비치게 하는 작용을 하는 것도 부인할수 없다. 여기에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야당지도자의 이미지를 새롭게 부각하려는 의욕이 반영된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아가 이대표가 벌써부터 대권행보를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흥미있는것은 이대표측근들은 이런 관측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이대표는 거의 매일 각종 직능단체의 모임에 참석하는가 하면 농촌현장과 시장을 찾아다니고 정치 경제 과학등 각 분야의 교수및 전문가들과도 자주 접촉하고 있다. 전례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이처럼 민주당의 실용주의적 변화는 이대표의 개인적 동기와 맞물려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조짐들이 달라진 환경과 예측하기 어려운 장래에 적응하기위해 야당이 진지한 진로모색기를 거치고 있음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고 할수있다. 앞으로 민주당과 이대표의 행로에 새삼 관심이 가는 이유는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황영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