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탄하는 과정에서 강압 체결된 을사조약(1905)이 본래부터 「무효」라는 주장은 지난해 5월 서울대규장각 소장문서를 통해 실증적으로 제기됐었다. 국제법상 필요 요건인 「위임장」과 「인준서」를 갖추지 못했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욱 확실한 직접증거인 고종황제의 친서가 미국에서 발견돼 구한말 망국사와 한일관계사에 새로운 일깨움을 주고있다. 을사조약 다음해인 1906년 6월에 미·영·불등 9개국 원수에게 고종황제가 보낸 이 친서는 『을사조약은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며, 황제로서 조약체결을 허가한 일이 결코 없다』고 원천적 무효를 선언한 것이다. ◆친서는 또 대신들을 협박 감금해서 소위 「정부회의」를 소집하고 가부결정을 강요한것등 일제의 불법성을 조목조목 지적, 을사조약의 국제법상 원인무효를 밝히고 있다.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함으로써 식민화의 바탕을 단단히 한 을사조약이 불법·무효라면, 그뒤 진행된 정미조약(1907)과 이른바 한일합방(1910)은 당연히 불법·무효일수밖에 없다는점이 중요하다. ◆일본은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이 합법적이며 유효한것이라는 전제아래 1965년 국교정상화때에도 청구권문제를 배상아닌 보상차원에서 타결했다. 당시 일본외무장관이었던 오히라(대평)전총리는 자서전에서 『한국이 독립해서 새나라를 세우는데 일본이 구종주국으로서 축의금을 내는 형식으로 청구권을 해결하는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썼다. 얼마나 굴욕적인 말인가. ◆이처럼 청구권을 배상아닌 축의금이라고 말할수있는 논거가 다름아닌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의 「합법성」인것이다. 그런점에서 이번에 발견된 고종황제의 친서는 식민통치의 불법성을 확고하게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사료라 할수있다. 고종황제의 눈물겨운 국권수호노력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한일관계사 재정립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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