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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무효」입증 논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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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무효」입증 논문 나왔다

입력
199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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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김기석교수 증거자료분석 첫 발표/고종친서 수결불필요… 진본 확실/국권수호 해외밀사조직 운영도 밝혀져 을사륵약이 불법이고 무효라는 사실을 확실한 증거자료 분석을 통해 입증한 첫 논문이 나왔다. 26일 우편을 통해 사학자들에게 배포된 이 논문은 내년 초 을사늑약에 관한 전문가들의 논문과 함께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최근 고종이 미국등 9개 국가 원수에게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작성한 친서와 위임장을 발굴한 김기석교수(서울대 교육학)가 쓴 「광무제의 주권수호 외교, 1905∼1907:을사조약 무효 선언을 중심으로」라는 이 논문은 친서와 위임장에 대한 서지학적 분석을 통해 을사늑약이 불법임을 입증하고 친서가 갖는 의미를 추적하고 있다.

 또 친서발송과 특사파견등을 고종(광무제)의 주권 수호를 위한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외교정책으로 설명하면서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먼저 이 두 문서에 미등록 인장이 사용되었고 황제의 서명인 수결이 없다는 점 때문에 문서 형식상의 시비와 함께 이 문서가 고종이 직접 승인한 진본이 아닐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고 신중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두 문서에는「보인부신총수」(황제와 황실이 사용하는 도장의 등록대장)에 등재되지 않은「황제어새」글자의 어새가 찍혀있고「압친서영보」란(수결과 어새의 찍을 자리를 표시하는 문구)과 황제 수결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부분에 대한 후속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도 이 두 문서가 황제가 승인한 진본임을 밝히고 있다. 

 그 근거로 친서전달에 따를 위험과 그 결과가 가지고 올 심각한 파장 때문에 친서와 위임장이 당시 정부의 정상적인 공문서 형태를 그대로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정황을 들고 있다. 

 또 황제가 직접 하달하는 문서는 진위여부가 명백하기 때문에「친서압영보」란을 만들지 않고 그에 따라 수결을 압인하지 않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시기에 같은 목적으로 작성된 친서나 국서의 내용이 동일하고 표현방식까지 같아 두 문서가 진본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서는 고종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이면서도 집요한 외교교섭을 추진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가 이번 논문을 관통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종에 대한 정밀한 연구도 없이 「우유부단하고 무능해 국권을 빼앗긴 왕」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를 깨뜨릴만한것이어서 주목된다.

 논문은 고종이 국권수호를 위해 1904년부터 1907년까지 벌인 외교적 노력을 재조명하고 있다.

 그는 고종의 외교적 노력이 공식적인 문서형태를 띠고 나타난 1906년 1월의 국서(을사늑약 무효와 독립주권 선언), 미국 교육가 호머 헐버트를 통해 미국에 전달하려한 1905년 11월의 전문(을사조약 무효 선언), 그리고 1906년 6월 헐버트에게 준 친서의 작성경위와 전달과정의 분석을 통해 고종이 외교교섭을 위한 해외밀사조직을 운용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밝히고 있다.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극비문서(국서)를 미지의 런던 트리뷴지 기자에게 맡겼겠는가』라고 자문한 그는 당사자인 스토리기자가 자신의 회고록에 중국 상해에서「황제의 이름없는 밀사들」(Agents of Emperor)을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 고종이 상해 덕화은행에 조직의 운영자금으로 보이는 상당 액수의 황실자금을 예치하고 전탁지부대신 이용익, 거물 정치인 민영익등에게 관리하도록 지시해 일본의 추적을 받았다고 밝히고 중국의 지부와 상해에서 고종의 밀사조직이 비밀 외교교섭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친서는 을사늑약이 국제법적으로 무효이며 불법임을 명백이 밝혀주는 직접증거이다. 따라서 을사늑약을 근거로 체결된「정미조약」(1907년)과 이른바 합방조약(1910년)도 당연히 무효라고 주장할 확실한 근거를 갖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국비파견교수로 미국에 간 그는 2월 한국교육제도변천사 연구자료를 수집하던 중 콜롬비아대학 귀중본 및 수고도서실에서 친서와 위임장을 발견했으며 그동안 관련 전문가들과의 협의와 자문을 통해 논문을 썼다.【서사봉기자】

◎고종 친서 전문

 대한국 대황제는 삼가 절하며

 대영제국 국왕 폐하에게 글월을 올립니다.

 귀국과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지나오며 여러 차례 두터운 우의를 입은 바, 지금 우리나라가 어려운 때를 당하고 있어서 모름지기 정의로운 우의로써 우리를 돌보아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불의를 자행하여 1905년11월18일 강제로 늑약을 맺었습니다. 그 일이 강제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세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 정부 대신이 조인하였다고 운운하는것은 진실로 정당한것이 아니며 위협을 받아 강제로 이루어진것이며,

 둘째, 짐은 정부에 조인을 허가한 적이 없으며,

 셋째, 정부 회의 운운하나 국법에 의거하지 않고 회의를 한것이며, 일본인들이 대신을 강제로 가둔 채 회의한것입니다.

 상황이 그런즉 이른바 조약이 성립되었다고 일컫는것은 공법을 위배한것이므로 의당 무효입니다.

 짐이 우러러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어떤 경우에도 결단코 응낙하지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이번의 불법 조약으로 국체가 손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장차 어떤 나라가 짐이 이 조약을 응낙 운운하였다고 주장하는 일이 혹시 있더라도, 원컨대 폐하께서는 믿지도 듣지도 말고 그것이 근거 없는 일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짐은, 당당한 독립국이 이와 같은 불의스러운 일로써 국체가 손상당하였으므로, 원컨대 폐하께서는 즉시 공사관을 이전처럼 우리나라에 다시 설치해 주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우리나라가 앞으로 이 사건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공판소에서 공판을 부치려할 때에 공사관을 우리나라에 설치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존할수 있도록 특별히 유념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는 진실로 공법상 당연히 옳은 일이 될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각별한 관심을 쏟아주기를 바랍니다.

 이 일의 상세한 내용은 짐의 특별위원인 헐버트씨에게 하문하시면 남김없이 밝혀줄 것이며, 옥새를 찍어 보증합니다.

 귀 폐하의 왕실과 신민이 영원이 하늘의 도우심을 받기를 엄숙히 축원하며, 아울러 성체 평안하심을 희구합니다.

 대한개국 515년6월22일

 1906년6월22일

 한성에서 이희 삼가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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