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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꾼 국회의원」…청빈선량 귀감/제헌의원 박기운옹 24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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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꾼 국회의원」…청빈선량 귀감/제헌의원 박기운옹 24일 타계

입력
1993.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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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걱정하는 사람은 굶을줄 알아야 한다”/손수레로 선거운동… 청탁 한건도 안받아 「리어카꾼 국회의원」박기운옹이 지난 24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서울 한강성심병원 지하 영안실에는 국화화환 몇개가 사후에 오히려 화사한 고인의 유지처럼 희미한 향기를 머금었으며, 꽃들 한 가운데 흑백사진틀 속에서 단정하고 준수한 콧수염의 고인이 유족 친지들의 슬픔을 굽어보고 있었다. 25일정오 영안실을 찾은 원장길제헌동지회회장은 재배를 마치고 영정앞에 잠시 앉아 있다가 갑자기 목을 놓아 울어버렸다. 그는 『박의원 먼저 가십니까. 청정했던 기개가 허무합니다』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광복직후 백범계열인 대동청년단 충북부단장을 거쳐 제헌국회에 진출한 고인은 이후 3·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청빈한 선량의 귀감이 됐다.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은 굶을 줄 알아야 하고,의를 알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백범의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아 「정치」 이전에 정치인으로서의 수신과 실천에 주력했다. 제헌의원 당시에는 『적산공장을 불하받아 정치자금으로 쓰자』는 주위 의원들의 말을 『그런 일 하라고 국회의원 뽑아줬나』하는 일갈로 물리쳤다. 또 제헌·3대의원 당시 줄곧 재경분과위 야당측 간사를 역임했지만 청탁 한 건 받지 않았다.

 장남 웅진씨는『동생들 학교도 제대로 보내지 못하던 형편에 청탁봉투 하나라도 받아두면 불호령을 내리던 어른이 야속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리어카꾼 국회의원」이라는 별명은 선거자금이 없어 리어카에 스피커를 달고 청주 시내를 돌며 선거운동을 벌여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67년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뒤에 있던 무허가 움막집이 헐린 뒤에는 실제로 서울중앙시장에서 날품팔이 리어카를 끌기도 했다.

  5·16 직후 처삼촌이던 정구영씨가 공화당참여를 권유하자 이마에 무명띠를 두르고 『의롭지 않은 권력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끝까지 버틴 고인은 정치의 쓴 맛만 보고 간 셈이 되었다. 유족들은 그러나 『정치는 어떨지 모르지만 인생에서는 승리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하고 있다.【장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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