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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그늘 지우기/김순남·윤이상음악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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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그늘 지우기/김순남·윤이상음악 재조명

입력
1993.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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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곡 연주 “음악적 복권” 자리로/청중도 어색함 씻고 뜨거운 갈채 해방이후 우리 근현대사를 지배해왔던 냉전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뛰어넘고자 시도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멍에로 다가왔다. 동구의 몰락으로 시작한 세계사적 지각변동으로 이제 그 이데올로기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남긴 상처와 얼룩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우리 음악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도 이데올로기의 그늘에 가려서 묻혀져야 했던 두 음악가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연주회가 최근 열렸다.

 21일 하오7시30분 광화문 뒷골목 미도파빌딩 6층의 한국페스티발앙상블홀. 1백80석을 간신히 넘기는 이 소극장에선 계단까지 들어찬 사람들의 열기가 갑자기 찾아온 초겨울 날씨마저 녹여내고 있었다.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음악감독 박은희)이 18일부터 계속해온 기획연주시리즈「20세기 음악축제―민족음악」 네번째 순서인 이날 무대의 주인공은 월북음악가 김순남이었다.

 『생애의 반은 남쪽에서, 나머지 반은 북쪽에서 보낸 김순남은 우리 음악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어느 한쪽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연주회는 그에 대한 음악사적 복권을 시도하는 자리입니다…』 노동은교수(목원대음대학장)의 해설로 시작된 연주회는「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른 봄」 가곡「산유화」「진달래꽃」「자장가 1, 2」등이 차례로 선보였다. 연주곡이 방송이나 무대에서 들을 수 없었던 곡들이어서 처음에 어색한 표정을 짓던 청중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연주에 몰입해갔고 일부 청중은 자신의 느낌이나 연주 중간에 이어졌던 노동은교수의 해설을 받아적는 열성을 보였다. 특히「산유화」나「진달래꽃」같은 가곡은 곡조 자체가 우리 민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다가 가사 또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뿍 담은 김소월의 시라서 그런지 깊은 울림을 주었고 객석에서도 뜨거운 박수가 나왔다.

 연주회가 끝난후 김순남의 딸 김세원씨(성우)는 『아버님의 작품만으로 무대를 꾸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 연주곡은「산유화」와「진달래꽃」을 제외하곤 대부분 초연 작품들로 앞으로 많은 음악인들이 작품 발굴에 힘을 써서 아버님의 음악이 재조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초연곡중엔 「내 고향은 먼곳에 있네/이 산은 수풀로 덮혀 있고…」로 시작되는「유격대의 노래」가 포함돼 있었다. 항일 빨치산의 향수를 담은 이 곡은 함세덕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로 한국적 선율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러시아작곡가 하차투리안이 편곡을 했다고 알려진 음악사적으로 유명한 곡이다.

  22일에는 재독작곡가 윤이상씨의 작품들이 연주됐다. 윤이상씨도 현대음악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된 후 국내에 한동안 이름조차 나오지 못했던 불우한 음악인이었다.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2중주」 「클라리넷 피아노 첼로를 위한 3중주」등 4곡이 연주됐는데 까다로운 현대음악임에도 불구, 청중들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동양적 서정과 기법을 바탕으로 한 윤이상씨의 작품을 듣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 이강숙씨와 젊은 작곡가들도 공연장을 찾았다. 이 연주회가 끝날 무렵 노동은교수는『60년대말 폐병을 얻었던 김순남선생님은 83년 쓸쓸히 세상을 떴고 어제는 원로작곡가 나운영씨가 타계했습니다. 이제 윤선생님의 연세가 76세, 더 늦기전에 그분은 우리 곁으로 돌아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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