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19일 박철언의원 결심공판에서 일어난 방청객들의 법정소란 을 「사법부 권위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로 규정하고, 서울 형사지법에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서울 형사지법은 법정 소란행위자를 일반 형사범으로 처벌하고, 단독판사가 처리하기에 무리한 사건은 합의부에서 재판토록 하고, 소란이 예상되는 사건은 방청인수를 제한하고, 변호사 단체의 협조를 구하는등 여러 대책을 마련했다. 한국 법원에서의 법정소란은 그 역사가 길고 기구하다. 지난 30여년동안 시국재판이 열릴 때마다 법정은 몸살을 앓았다. 특히 유신시절의 법정소란은 그 자체가 중요한 정치행위였다. 피의자들과 방청인들이 재판도중 애국가와 운동가를 합창하는 「소란」도 흔히 일어났다. 법정소란 이외에 다른 항의표시의 통로가 없었던 암울한 시절의 얘기다.
그때마다 법원은 법정소란을 『사법부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법정소란을 뿌리뽑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사법부의 권위를 방청인들이 지켜줄 리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법원은 어제의 법원이 아니다. 사법부는 자기 살을 깎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도 법원에 대해 불만을 가질수는 있지만, 오늘의 법원이 유신시대의 법원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법원에 항의하는 방법은 당연히 유신시대와는 달라야 한다.
슬롯머신 업자 정덕진씨 형제로부터 6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월 23일 구속된 박철언의원은 자신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재판을 받을때마다 수백명의 지지자들이 몰려와 고함·야유·박수등으로 법정을 소란케 했다. 박의원은 19일 결심공판에서 『재판부를 신뢰할수 없어 퇴정하겠다』고 요청하면서 이렇게 진술했다.
『…권력의 칼자루를 쥔 쪽에서 미워하는 사람의 육신을 짓밟을수는 있지만 의지와 영혼을 짓밟을수는 없습니다. 권력은 짧지만 역사는 유구합니다…』
그는 옳은 소리를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진술에서 떠올리는것은 군사정부아래 육신을 짓밟히면서 영혼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던 수많은 민주운동가들의 얼굴이지, 「희생자 박철언」의 얼굴이 아니다. 유신시절 검사였던 그는 정치재판에 희생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했던 사람들의 고난을 기억할것이다.
권력은 짧지만 역사는 유구하다는 그의 말대로 「6공의 황태자」였던 그는 오늘 법정에 서있고, 그의 지지자들은 재판부를 못믿겠다고 소란을 벌이고 있다. 그가 이사건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억울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지금이 유신시대가 아니라는것부터 깨달아야 한다. 오늘의 법정소란은 「폭력」일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박의원은 법조인출신 답게 법정의 권위를 지키면서 싸워야 한다.
오늘도 법정소란이 있다는것은 법원의 권위가 아직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이번 재판에서도 재판부가 지나친 사생활 공방을 허용하는등 석연치 않은 인상을 남긴것은 유감이다. 법정소란은 방청객 수백명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법원 자신의 문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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