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본질은 자각이다. 그것은 치열한 자기탐구이기도 하다. 한낱 생활의 장식용으로 머무를 수는 없다. 문화의 달이기도 한 요즘 우리 주변에선 갖가지 행사가 질펀하게 벌어지고 있다. 어제는 문화의 날이었다. 문화예술의 계절임을 실감하면서도 한편으론 허전하다. 예년 그대로 도식적인 행사문화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행사문화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문화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무성한 가지와 열매를 바라보기 보다 뿌리를 살펴야 할것이다. 문화정책의 새로운 출발점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 문화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전통의 계승과 발전, 세계화, 자기내실과 다양성등 숙제가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많다. 그렇다고 일거에 이런 과제를 풀고 밀어붙인다는것은 과욕이다.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에도 기초투자가 중요하다. 눈앞의 실례로 도서관의 실정이 어떠한지 다시 부각해 볼만하다. 「책을 열자, 미래를 열자」며 책의 해를 보내고 있으나 결국 행사구호로 끝나는게 현실이다. 문화정책만 아니고 일반의 관심도 즉흥과 1회용으로 마감한 아쉬움을 남긴다.
문화는 성급하게 가시적인 효과만을 꾀하면 그 투자는 낭비와 허송이 되어 버린다. 행사문화의 취약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대보다 먼 후대를 내다보는 기초의 다짐이 문화의 본질을 살리는 자세임을 강조하게 된다.
문화의 달과 문화의 날을 특별히 제정했음은 문화의 생활화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당초 취지는 본말이 뒤집혔다. 문화의식의 함양은 뒷전에 밀어두고 놀이문화를 고양시켰다. 그리하여 이른바 고급문화는 답보에 빠지고 어설픈 외래문화를 등에 업은 대중문화가 우리 생활 여기저기에 침투하게 된것이다. 문화정책의 실적주의가 남긴 유산이라 해도 할말이 없다.
장식용 행사문화는 그 한계를 이미 드러냈다. 창조력을 개발하고 북돋우려면 기초문화로 관심이 돌려져야 한다. 도서관이나 박물관과 같은 문화공간을 하나라도 더 넓혀 문화의식의 향상을 꾀하는게 바람직하다.
아울러 문화의 지방화와 분산도 서둘러야 할 과제라고 할 수있다. 문화의 중앙집중주의 경향은 혜택의 독점을 초래하여 불균형을 낳는다. 행사의 분산이 지방문화에 도움은 되겠으나 그나마 일시적인 현상일뿐 효과는 크다고 볼 수 없다. 문화의 생활화와도 거리가 멀다. 본디 문화의 원류는 씨를 뿌리고 경작함이다. 행사는 수확을 기뻐하기 위함이다. 수확도 없이 떠들썩한 잔치를 벌이는것은 어색하다. 창조와 생활화로 문화의 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