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 정치외교학과 이종석강사는 지난4월 이 대학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논문제목은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주체사상과 유일지도체계를 중심으로」였다. 그는 이 논문으로 8월에 학위를 땄다. 이박사는 적지않은 북한 관찰자나 연구학자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이다. 1989년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5」(한길사간)에서 「북한지도집단의 항일 무장투쟁」 부문을 썼다. 그후 비평적인 잡지들인 「사회와 사상」, 「역사비평」, 「사상문예운동」, 「말」지등에 북의 수령과 지도자, 그를 둘러싼 지도집단에 관한 논문을 10여편이나 썼다.
수령과 특히 지도자에 대해 그를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그는 글을 쓰는듯 보였다.
그러나 북에서 출판한 주체사상에 관한 숱한 책, 「로동신문」, 중국 모택동주의에 대한 중국측 원전, 일본에서 북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객관적 논문등을 섭렵함으로써 그는 편향을 넘는 객관성을 찾아낸 특이한 학자라고 느껴진다.
신문기자적인 북의 관찰자들에게 그의 학위논문은 문체가 쉬워서 좋게 보인다. 또한 인용논문중 외국학자들의것이 적어서 읽기가 쉽다. 무엇보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수령은 스스로 만들어진 제왕이요 성군이라는 결론이 좋다.
그는 수령이 공산주의 세계에서 단 한명의 유일지도체제의 우두머리가 되고 그의 아들 지도자가 제2의 수령이 되려고 하는 역사, 정치, 사회적 배경을 추적하고있다.
그 시작은 어느때였을까. 67년5월1일 노동절날 「로동신문」은 여지껏 단일지도체제에서 부르던 수령의 형용어 「경애하는」을 「위대한」으로 바꾼다. 5월한달동안 수령호칭은 79회나 나왔다. 수령이 1면 머리기사로 나온것은 24회. 66년 5월한달동안 수령호칭은 재일동포관련기사에서 11번 나왔다. 1면에 수령기사가 실린것은 단 한번이었다.
이박사는 분석하고있다. 56년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는 공산주의에서 스탈린의 개인숭배의 오류를 지적한다. 58년 3월 중국은 북한에서의 철군 주장과 함께 5월에는 핵개발을 성명한다. 중소분쟁이 시작된것이다.
수령은 56년 수령 단일체제에 반기를든 박창옥내각부수상등 연안계를 반종파주의자로 숙청한다. 중소의 분쟁에서 미국이 중국편향으로 기울자 수령은 의사집단지도체제를 58년께부터 단일지도체제로 바꾸며 기회를 노린다.
수령이 55세가 되고 지도자가 25세로 수령의 수행원, 노동당 지도원이 되는해에 그는 유일지도체제의 터를 닦기 시작했다. 그때의 공산주의 국제사회분열상은 개인숭배가 전제조건인 수령의 유일지도체제를 간섭할 주도자가 있을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수령은 67년부터 인민대중에 「항일 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읽게했다. 스탈린과 모택동의 개인숭배와는 숭배케 하는 방법이 달랐다.
수령은 먼저 그의 가계를 혁명화 했다. 68년에는 수령일가를 그린 「만경대」와 「우리의 어머니 강반석여사」의 기록영화가 상연됐다. 무엇보다 67년5월 당중앙위원회 4기 15차전원회의에서 그는 여지껏 갑산파로 불렸던 박금철(정치국상무위원), 이효순(대남공작책)등 10여명을 숙청했다. 그만을 유일하게 숭배하도록 하는 체제의 실상을 모르고 이들이 그자신과 그들의 가족을 높이는 책과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수령을 이렇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이박사는 분석한다. 66년에 일어난 중국의 문화혁명의 불길이 북으로 튀어 온점, 전후 복구 경제계획의 성공등이 수령의 의지를 자극했을것으로 추정도한다.
그는 수령의 개인숭배의 주관적 요소를 추론한다. 결국 수령 개인의 배타적 「권력의지」와 「제왕의식」에서 유일지도체제는 비롯되었다는것이다. 수령이 봉건시대의 「성군사상」를 가졌기에 「의지」와 「의식」은 생겼다는것이다. 북 사회저변에 흐르는 봉건유교적 전통은 「위대한 수령」이라는 신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것이다.
유일지도체제가 형성되면서 북은 어떻게 변했을까. 인민대중은 역사의 비주체적인 피동체가 됐다. 사회는 개인숭배, 기계적인 집단주의가 가득찬 왜곡사회가 됐다. 위대한 수령은 정치사회 유기체의 최고뇌수, 무오류성의 천재 성군, 제왕이 됐다. 그 아들도 이 제위를 물려받는것이 당연한것으로 되어 버렸다.
공산사회주의는 미개한 사회과학이 됐다. 국가의 경제성장은 무조건, 무오류성 때문에 저성장에 머무는 「배고픈 사회주의」, 「민주없는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북에는 아직도 희망이 있는가. 이종석박사는 92년4월 개정된 북의 헌법 처럼 유일지도체제의 권력분산이 실천되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 지도자 자신이 유일지도체제의 해체만이 그가 승계할 수령직의 고수책임을 알기를 희망하고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