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동참 신경영전략 속속발표/“마누라 자식빼고 모두 바꿔라”/이건희회장/“의식개혁 질좋은 상품 만들라”/정세영회장/“실명제 조기정착위해 합심을”/구자경회장/“세계경영… 투자 조기집행하라”/김우중회장/“수출드라이브 전략 마련하라”/최종현회장 상당수 재계 총수들은 담배를 즐긴다. 일부 총수들은 하루종일 담배를 입에 물고있다시피 할 정도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재벌총수들이 사실은 남다른 스트레스와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들 애연가 총수들은 흡연량을 대폭 줄이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은 최근 즐겨 피우던 박하향 담배를 하루 한갑 반 이하로 줄였다. 그는 얼마전만해도 초록색 포장의 88마일드나 라크 맨솔등 박하향 담배를 하루 두갑이상 피웠었다.
줄담배로 유명한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이나 하루 한갑 반정도를 피워왔던 럭키금성그룹의 구자경회장, 쌍롱그룹 김석원회장등도 흡연량을 절반가량으로 줄였다.
특히 88디럭스를 하루 최고 3갑까지 피웠던 대우그룹 김회장은 요즘들어 1갑정도만 피우고 있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하루에 몇번씩 담배를 물었던 한진그룹 조중훈회장은 이제 더 이상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다.
이들 애연가 총수들이 담배를 줄인것에 대해 재계 관계자들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이유도 있겠으나 보다 큰 또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고있다.
삼성그룹 이회장이 담배를 그나마 줄인것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섰고 5년 가까운 침묵을 깨고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질경영」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우의 김회장이나 럭키금성의 구회장의 경우도 뭔가 달라진 심경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뇌는 끝이다. 결단과 실천만이 남았다」는 총수들의 변화된 모습이라는 풀이다.
『사실 새 정부 출범이후 주요 그룹의 총수들에게 하루하루는 고뇌의 연속이었다』는것이 총수측근들의 공통된 말이다. 변화와 개혁의 대세는 어떻게 흘러갈것인가,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어떤 방향으로 대응해 나가야 하는가등을 놓고 제기된 끊임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는것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정치자금은 일절 받지 않겠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일성이 재계 총수들에게는 천근만근의 중압감으로 받아들여졌고 추상같은 사정의 칼은 정권교체기때마다 휘몰아쳤던 과거지사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광복직후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된 수많은 재계총수, 5·16발발 12일만에 있었던 혁명군 특별수사대의 기업인 체포, 80년 5월 31일에 발족된 국보위의 중화학 투자조정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것이다. 8월 17일부터 시작된 김대통령과 재계총수들의 면담은 총수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실마리가 됐고 금융실명제전격실시이후 김대통령이「경제회생 우선」의지를 잇달아 천명함으로써 재계에 새로운 변화의 기운이 본격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큰 혼란을 우려했던 금융실명제도 실명전환 마감결과 이변이 없는 한 제대로 자리를 잡아나갈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최근들어 재계가 『행동으로 보이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배경이다.
전경련등 경제단체들이 새롭게 움직이고 있고 재계도 미루었던 투자를 조기에 집행하며 의식의 변화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각종 선언 및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특히 주목할것은 이같은 변화는 각 그룹 총수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그룹의 총수들은 최근들어 잇달아 사장단회의와 임원세미나등을 통해 개혁을 선언하고 직접 생산현장을 찾아 변혁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이회장은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모두 바꿔라』는 말로 삼성그룹 전체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고 대우그룹 김회장은 중국 필리핀등을 돌며 그동안 추진했던 「세계경영」의 실천에 나섰다. 현대그룹 정회장은 그룹 임원회의를 열어 『더 이상 노사분규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사를 강력히 전달했다. 선경그룹 최종현회장은 전경련회장 자격으로 전국을 돌며 국가경쟁력 강화방안을 모색했다.
『의식개혁을 통해 질좋은 상품을 만들고 수출로 살 길을 찾자』(정세영회장), 『금융실명제를 빠른 시일내에 정착시키기 위해 합심하자』(구자경회장), 『투자를 조기에 집행하라』(김우중회장), 『세계 일류화상품을 개발하는 강력한 수출드라이브전략을 수립하라』(최종현회장), 『수출을 매년 30%이상씩 늘릴 수 있는 국제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하라』(박용곤두산그룹회장)등은 그룹 총수들의 결단과 신경제에 동참하기 위한 실행의지를 반영한 최근의 발언들이다.
그렇다고 총수들의 고뇌가 말끔해진것은 아니다. 재계 관계자들은 『13년래 최악이라는 올해의 경제상황아래에서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하나 뾰족한 방안이 서지 않는다. 미국 일본 유럽등지의 경제상황도 쉽사리 회복될것 같지 않다. 새 정부의 개혁의지에 맞춰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고 국내 경기활성화의 첨병역할을 맡겠다는 총수의 의욕과는 달리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재계관계자들은 『의욕과 현실사이에서 균형을 맞출수 있는 묘수를 찾게될 때 총수들의 흡연량은 더욱 줄어들것』이라고 보고 있다.【이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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