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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학습(초등교육을 살리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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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학습(초등교육을 살리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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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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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교육열” 동심이 멍든다/방과후 숙제→학원→과외 “쉴틈이 없다”/성적경쟁서 능력·개성계발 눈돌려야 아이들은 쉬고 싶다. 시험과 숙제,학원에다 각종 과외에 쫓겨 마음껏 뛰놀 자유조차 없는 그들은 어른들의 강요로 일찍부터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에 길들여진다.이제 막 배움의 길로 접어든 국민학교 초년생들조차 소질과 개성을 발견하기에 앞서 이기심과 경쟁논리부터 배운다.

 인간기르기가 배제된 학교교육,아이를 만능으로 만들려 하는 극성학부모의 빗나간 교육열은 철없는 동심과 우리의 미래를 멍들게 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S아파트에 사는 김모군(10·K국교5)의 하루는 옆에서 지켜 보기만해도 숨가쁘다.아침 7시30분,사업을 하는 아빠보다 일찍 집을 나온 김군은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40여분거리의 명문사립 K국교를 향해 등교길에 오른다.버스안에서 김군은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영어단어를 왼다.

 상오 8시50분 1교시 수업시작전에 한자,영어단어를 자습한 김군은 이미 과외강사로부터 배운 내용이지만 딴전을 피우지 않고 수업에 귀를 기울인다. 얼마전엔 수업중 수학학습지를 펴놓고 공부하다 들켜 단단히 주의를 받았었다.

 수업 중간중간 휴식시간에 친구들끼리 서로 어울려 장난치거나 잡담하는 경우도 드물다.「공부좀 하는」친구들은 으레 쉬는 시간에 영어단어를 외거나 수학학습지를 펴놓고 문제를 풀고 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면 더 바빠진다. 하오 3시30분께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다시 챙겨 컴퓨터학원으로 직행한다. 컴퓨터수업을 마친뒤 부근「학원 백화점」빌딩으로 달려가 영어학원과 한문서예학원에서 각각 1시간씩 수업을 하고 집으로 오면 하오 7시무렵. 검도교실과 실내수영장까지 다녀와야 하는 수요일과 토요일은 더욱 힘이 든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1주일에 세번 하오 8시부터 1시간동안 같은 동에 사는 친구 2명과 함께 교육대생으로부터 국어 산수 사회 자연등 주요 과목의 그룹과외를 받는데 학교수업보다 1∼2단원 정도씩 진도가 앞서 있다.

 정규과목과외가 없는 날은 영어 수학 학습지 선생님이 번갈아 오는 날이거나 음대 기악과 아르바이트생한테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날이다.모든 과외학습을 끝마친뒤 밤 11시께 잠자리에 들기전까진 학교숙제와 씨름을 해야 한다.

 김군의 책상위엔 학교시간표외에 예능특기시간표,학습진도표,학원시간표등 어머니가 만들어준 시간표가 4개 더 붙어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H아파트에 사는 박모군(12·S국교5)은 영어동화교실과 글쓰기교실, 컴퓨터학원등 7군데나 학원에 다니는데 취학전부터 이제까지 거쳐온 학원종류만해도 20가지가 넘는다. 벌써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글쓰기와 책읽기과외학습에 치중하고 있는 박군은『우리반 친구들 중에서 4∼5개씩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애들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국교생의 학원과외열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과 생활수준의 구분없이 유행병처럼 번져있다.지난해 6월 서울시교육청이 시내 27개국교 7천8백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원수강실태조사에 의하면 70%인 5천4백65명이 피아노교습소및 속셈·영어학원등에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1개 학원을 다니고 있는 어린이가 3천8백59명(49.3%),2개 학원이 1천4백19명(18.1%),3개학원이 1백63명(2%), 4개이상도 0.3%(24명)나 됐다.

 가정교사를 통한 과외학습, 담당교사가 1주일에 1∼2번 방문강습을 하는 학습지과외등까지 합치면 사실상 국민학교학생 대부분이 학교수업외에 별도의 과외교습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국민학생들의 학원수강은 소질과 적성의 조기계발, 교육기회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실태는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우선 넘쳐나는 교육의 양도 문제지만 교육의 질과 내용은 더 큰 문제이다. 요즘 웬만한 아파트단지 주변에서는 한 건물에 20여개씩 각종 사설학원이 밀집한 「학원백화점」빌딩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속셈·주산·웅변학원등의 간판을 내건 상당수 학원들이 자격을 갖추지 않은 강사들에게 정규학교 교과를 시험대비위주로 변칙교습토록 하고 있다. 학원과외가 아이들의 점수따기경쟁을 부채질하고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수업중 버젓이 학습지를 꺼내 놓고 문제를 풀거나 학원숙제를 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지식위주의 과외수업에 매달려 성적올리기에만 급급한걸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학교교육이 하루빨리 입시위주에서 해방돼 아이들이 과외나 학원없이도 알차고 참된 인간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C국교 5학년 담임교사 이모씨(38)의 바람이다.

 과잉학습,과열과외의 궁극적인 피해자는 우리 사회다. 교육의 주체여야 할 학생이 입시와 성적의 노예로 전락한다면 우리의 학교교육은 복종과 권위의 질서를 재생산하는 악순환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화여대 초등교육학과 이성은교수(여)는 『초등교육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전인교육이어야 하는데 열등감과 시기심,잘못된 경쟁논리만 심어주는 지식위주의 입시교육으로 뒤바뀌어버린 게 우리 교육의 현주소』라며『아이들이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하지만 교육현장에 있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개혁의지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국교생 남매둔 김봉란씨/“우리 아이만 처지는 기분… 학원 안보낼수 없어”(학부모의 소리)

 『얼마전 국민학교 2학년생인 막내가 시험이 없어진다는 TV뉴스를 보고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웃어 넘기고 말았지만 아직 코흘리개인 우리애한테도 시험과 공부가 얼마나 큰 심리적 부담을 주었으면 저럴까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처럼 혹사시키고 싶어하는 학부모는 아마 없을 거예요. 하지만 7∼8개 학원을 다니며 과외학습을 받는 다른집 애들을 볼 땐 「우리아이만 뒤처지는게 아닐까」하고 걱정부터 하는게 솔직한 부모심정일겁니다』 

 국민학교 4, 2학년 남매를 두고 있는 김봉란씨(38·사진·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705동 306호)는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교육이 어떤것인지 늘 자문해 보지만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김씨는 아이가 시험을 보고오면 『몇개 틀렸니』하고 다그쳐 묻는「극성학부모」이기도 하지만 과외학습만큼은 소질과 능력을 고려해 원하는것만 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딸 조채연양(11·양정국4)은 컴퓨터 영어 피아노학원에, 아들 윤하군(9·양정국2)은 컴퓨터 바둑학원에 다니게 하고 있는「평균학부모」김씨는 학교수업만큼 필수과정이 돼버린 요즘의 과외학습열풍에 놀라곤 한다.

 『지난 여름방학땐 시험과 과외에 쫓겨온 큰애가 너무 안돼보여 다니던 학원 세곳을 한달간 쉬도록 했어요. 읽고 싶은 책도 읽고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자유시간」을 줬던거죠. 처음엔 좋아하던 아이가 얼마후 다시 학원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거예요. 또래친구들 모두가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함께 놀 아이가 없다는거였습니다.방학때조차 아파트단지내 놀이터가 텅 비어있는것을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김씨는「극성학부모」문제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시험성적만으로 아이를 평가하는것은 물론 잘못이지요. 하지만 학업성적이 아이의 존재는 물론 부모의 지위와 위상마저 규정짓는게 우리 현실 아닌가요? 또 학교교육이 다양하고 알차다면 누가 굳이 돈들여가며 아이를 학원에 보내겠습니까』

◎어린이들 생각/공부강요하는 엄마가 마치 마귀처럼 느껴져요…

 「시험지를 받아들면 부모님 얼굴부터 떠오른다. 매를 들고 종아리를 틀린 수대로 때릴 어머니.공부하기 싫으면 공장에 가서 일하라고 소리치실 아버지. 부모님은 정말 나보다 시험성적이 소중한가보다. 시험, 시험,시험이 정말 싫다」

 「누가 시험같은걸 만들어서 날 괴롭힐까? 엄마는 시험을 못쳤다고 나더러 나가라고 했다. 나는 속셈학원 마치고 집에 오면서 정말 나가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엄마가 아니 그 계모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걸」

 공부와 시험, 과외에 쫓기는 아이들. 그들 눈에 비친 세상은 어둡다.

 교육전문월간지 「우리교육」의 제2회 학급문집 공모전(92년10월)에 응모한 만화, 일기글, 편지글, 시등에는 아이들의 솔직한 소리가 담겨 있다.

 아이들에겐 성적 때문에 채근하고 과외수업을 강요하는 어머니가「우락부락 뿔달린 도깨비」나 「마귀」로 둔갑하기도 하고  「계모」로 돌변하기도 한다.

 전교조 초등위원회가 지난해 전국 국민학교 3∼6년생  1천7백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의식조사에서도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41.6%가 있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 부모의 야단,간섭,잔소리(35.7%),공부( 22.8%)를 주로 들었다.

 부모의 극성스런 참견과 강요된 학습은 결국 아이들의 정서불안을 유발하고 심지어는 죽음까지 초래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인격과 자존심이 짓밟히고 능력과 소질이 무시되는 억압적인 상황에 민감히 반응한다.

 서울 S국교의 한 어린이는 교장선생님께 드리는 편지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생님은 우리보고 늘 학교의 주인이라고 말하시지만,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는 주인도 있나요? 공부해라 학원가라 숙제해라…. 시키는대로만 해야 하는 우리는 역시 주인이 아닌가봐요. 제발 좀 저희를 주인으로 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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