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이 「수백명」인 정기훼리선이 운항중 침몰한 대형 해난사고가 발생했으나 하루 해가 다 지나가도록 정확한 승선인원을 몰라 갈팡질팡이고, 그래서 사망자가 몇백 몇십 몇명이 될 것인지도 알지를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고 자체가 원시적이라는 사실보다 더 심각하고 충격적인 부분이 그것이다. 어처구니없음을 개탄만 하고 있을 계제는 이미 아니다. 몇명이 탔는지를 알 수 없으니 몇명이 희생됐는지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목격자나 구조된 생존자들의 증언도 엇갈린다. 승선정원을 지켰다고 가정해도 희생자는 최소한 1백수십명을 헤아리게 된다.
일요일인 10일 상오 서해 위도―격포항로에서 발생한 서해훼리 침몰 참사는 사고희생자의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온 국민을 가슴아프게 한다. 그리고 대중운송수단인 연안―여객선의 안전관리와 운영실태가 너무나도 원칙을 지키지 않는 후진국수준이었다는 점에서 국민을 분노하게 한다. 21세기 첨단과학을 세계에 과시하는 대전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나라의 내용과 실질이 이런 정도였다는 것을 새삼 과시한 셈이다.
당국의 조사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는 몇가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첫째는 승객과 짐을 지나치게 많이 실었다는 생환승객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습적인 정원초과운항의 의혹이다. 둘째는 정원 승선을 점검하고 감독하는 경찰기능의 실종이다. 셋째는 승객들에게 퇴선을 알릴 겨를도 없이, 또한 구조요청을 하지도 못한채 침몰했다는 점에서 항해의 미숙, 또는 선박의 구조결함이나 고장을 의심하게 된다. 넷째는 비상시 구명장비들이 사용가능한 상태였는가 하는 점이다. 다섯째는 경찰―해운항만당국―해군등으로 분산된 비상구조시스템의 협조와 가동이 원활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의혹과 추정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 이상이 못된다. 주목할 일은 이들 추정 가능한 문제점들을 관통하는 「포괄적인 사고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우리는 무엇인가 「풀려있는」 우리 사회의 이완현상에서 찾게 된다.
문민정부 이후 지속되어온 사정바람은 우리 사회 일각에 변화를 주고 긴장과 한기마저 몰아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사회구조의 저변과 그 구성원들의 마음에까지 닿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그 저변들이 일어나서 스스로 법과 규칙을 지키고 깨끗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바람을 직접 받는 층은 불만스럽고,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선 나몰라라 한다면 그 개혁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정부는 지난3월의 구포역열차전복, 7월의 아시아나항공기추락에 이어 바다에서 마저 일어난 대형사고의 의미를 헤아려야 한다. 철저한 원인규명과 추상같은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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