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초과·기상무시 출항 강행/선박사 안전대책 미비 큰 피해 서해훼리호침몰참사는 기상상태를 무시한 무리한 운항, 선박회사의 안전대책무방비, 해상교통의 안전체계미흡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재다.
사고원인은 정밀조사를 해야 정확히 밝혀지겠지만 많은 사망자가 났다는 점이 이같은 문제점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우선 이번 사고가 근해에서 발생했고 인근에 어선등이 조업중이었는데도 이같이 많은 인명피해가 난것은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선박회사의 안전운항에 대한 무관심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사고선박은 출항때부터 기상상태가 좋지 못해 출항을 미루다 운항을 강행했고 정원을 초과해 마구잡이로 승객을 승선시켜 정확한 승선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사고 발생후 우왕좌왕 했다.
특히 사고에 대비한 안전대책이 제로상태였음이 목격자와 관계기관의 일차 조사로 드러났다. 사고선박의 사고발생사실은 문제의 배가 아니라 인근에 있던 어선들이 무선국에 보고해 알려졌다. 많은 인원을 태우고 운항하는 여객선이 사고발생직후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다는것은 종사자들에 대한 안전교육이 턱없이 부족했거나 정비불량으로 육상과의 연락장치가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말해 준다.
뿐만아니라 근해사고임에도 불구, 구조작업이 늦어져 인명피해가 늘어난 점은 해상사고에서의 긴급재난구호대책이 미비했음을 말해준다. 이날이 일요일로 관계기관간의 비상연락이 제때에 이뤄지지 않았다. 이바람에 사고현장에 함정 헬기등이 도착했을 때는 사고 선박의 형체도 찾아볼 수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곧 사고선박의 규정을 무시한 안전장비미비치와 맞물려 피해를 가중시켰다. 사고선박이 구명조끼등 안전장구를 충분히 갖추고 승무원들의 안전교육이 제대로 돼있었다면 보다 많은 승객들이 구조될 수 있었다.
이번사고는 육상교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해상교통에 대한 정부의 지원미비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여객선의 경우 어민등의 이어현상으로 적자운행을 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선박회사의 투자는 물론 정부의 지원도 미약하다.
현재 전국의 여객선 1백50척중 재래선이 1백3척(69%)이나 된다. 특히 선령15년을 초과한 노후선이 32%인 48척이나 돼 이같은 사고위험이 항상 잠복하고 있었다고 할수 있다. 낙도보조항로의 경우 53개항로에 56척이 운항중이나 운항결손액이 92년 한해동안 68억원이나 된다. 또 소득수준향상으로 서비스에 대한 욕구는 높아지고 있으나 선박사나 정부지원이 이에 따르지 않아 자격을 갖춘 선원확보마저 제대로 못한다는것이 해운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는 선원취업률이 88년 59.3%에서 90년 52.5%,92년 39.4%로 급격히 떨어지는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사고선박은 선령이 3년밖에 되지않은 새 배이다. 그런데도 이같은 사고가 발생한것은 현재의 해운업계현실과 무관치 않은것임을 말해주는것이다.
특히 군소도서가 많은 남·서해안의 경우 재래선의 현대화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카훼리의 필요성이 점증해 부두시설확충등의 안전대책은 더욱 절실한 상태다.
정부는 이에따라 재래선등 70척을 2000년까지 현대화한다는 계획이나 국고 지원은 21척, 1백20억원에 불과하고 불황을 겪고 있는 선박사에 49척, 1천8백38억원을 배정, 구두선(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교통부자료에 의하면 82∼92년 해난사고는 모두 3천2백8건으로 운항과실에 의한것이 55.8%(1천7백89건), 정비불량 20.9%(6백70건)로 인재가 전체의 76.7%이며 기상등 불가항력은 7.9%(2백54)에 불과하다.
결국 사고의 직접원인은 기상상태를 무시한 운항과 승무원의 운항원칙을 도외시한 선박조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원시적인 사고에 정부차원의 안전대책무방비가 피해를 늘린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우리 해상교통현실이 위에서 보는대로라면 이제부터라도 이같은 사고예방을 위한 대책수립은 물론 해난구조장비 확보, 사고시 민관군이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범정부차원의 구난체계확립을 서둘러야 한다. 또 무역증가에 따른 원양에서의 대형 사고대책을 위해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상수색및 구조에 관한 국제협약」가입도 서둘러야 한다.【정재롱기자】
□주요 선박사고 일지/사=사망, 실=실종
▲45년10월4일 일본 무학근해서 교포귀환선 부도환침몰(사 3백60명)
▲49년10월5일 인천근해서 평해환침몰(사 1백20명)
▲53년1월9일 다대포 앞바다서 창경호침몰(사 1백70명)
▲53년1월25일 완포리 앞바다서 행운호침몰(사 1백70명)
▲62년9월7일 한강서 나룻배 침몰 (사 26명)
▲63년1월18일 영암 가지도 근해서 여객선 연호 침몰(사 1백38명)
▲67년1월14일 남해 가덕도 근해서 여객선 한일호 구축함과 충돌, 침몰(사 94명)
▲68년5월24일 군산앞바다서 연락선 침몰(사 17명,실 4명)
▲69년9월17일 낙동강서 나룻배 침몰(사 64명)
▲70년11월5일 소양강서 연락선 금산2호 침몰(사 29명)
▲70년12월15일 거문도 해상서 정기여객선 남영호 침몰(사 3백23명)
▲71년1월7일 여수앞바다서 여객선 질자호 화물선과 충돌(사 30명,실 2명)
▲74년2월22일 충무앞바다서 해군 YTL(항내예선)침몰(사 1백57명)
▲76년1월17일 울릉도 근해서 여객선 만덕호 침몰(사 1명,실 36명)
▲77년12월2일 울릉도 근해서 어선 제11강원호, 제11신길호 실종(실 47명)
▲80년6월24일 거제근해서 여객선 엔젤 1·2호 충돌(사 5명, 실4명)
▲80년10월31일 울릉도 근해서 오징어잡이배 제5봉종호 침몰(실 35명)
▲85년 3월15일 제주도 근해서 어선 세진호 전복(사 26명)
▲86년 11월27일 강화도 앞바다서 카페리2호 침몰(사 12명,실 16명)
▲87년 2월28일 오키나와 근해서 오징어잡이배 영지호 실종(실 34명)
▲87년 6월16일 거제 근해서 유람선 극동호 침몰(사 29명,실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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