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승리 통해 법치국가 전통세워야 전세계가 모스크바의 심장부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TV로 지켜봤다. 구시대와 맞섰던 이번 싸움은 매우 실제적이면서도 상징적인것이었다. 구시대를 옹호하는 무리들은 붉은색이나 갈색 또는 적갈색을 띠고 있다.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러시아가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는 이정표가 될 이번 투쟁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아직 최후의 승리를 거둔것은 아니다.
「화이트 하우스」(러시아 의사당 건물)에 대한 공격은 폭동사태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이 건물을 불길에 휩싸이게 했지만 사회 일각에서 부추겨지고 있는 과거회귀심리를 태워 없애지는 못했다. 의회에 대한 봉쇄조치가 사실상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버텨냈다는 것은 그 한 예다. 또 이타르 타스 통신사는 이번 사태의 와중에 두차례나 공격당했다. 첫번째 공격은 「반란세력」을 지지하도록 하기위해 시도됐다. 지난 6일 보수세력의 수뇌부가 체포 된 후에 감행된 두번째 공격에서는 장교 1명이 사망했고 다른 1명이 부상했다. 아직도 70여명이 넘는 저격수들이 타스통신사등을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아 모스크바시내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언론인들의 피해가 없다는것은 불행중 다행스런 일이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맞게 될것인가.
옐친대통령은 러시아내에서 단호하고 명확한 관계를 설정하려하고있다. 그는 단순한 주장이나 요구에 만족하지 않고 구체제를 완전히 허물어뜨림으로써 개혁반대자들에게 빌미를 주지않기 위해 행동으로 나설 확고한 준비가 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분쟁은 끊임없이 계속될것이며 자유의 투사들은 독재를 옹호하는 세력들의 무자비하고 피비린내나는 저항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상황논리에서 러시아가 현재 추구하고 있는 국가적 목표는 그 어느때보다도 방법을 정당화시키는 힘을 갖게 된다. 대통령이 만약 이 싸움에서 지게된다면 그것은 러시아 민주주의의 파괴적인 종말을 의미하게 될것이다.
옐친대통령이 현재 조기총선 실시를 앞두고 매우 강력한 민주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러시아 최초의 직접선거에 의해서 선출돼 유일한 법적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나아가 옐친대통령은 오는 12월로 예정돼 있는 조기총선을 통해서만 그가 절실히 필요로하는 더욱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옐친대통령은 자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정당을 갖고 있지 않다. 뿐만아니라 옐친대통령은 대의회투쟁에 있어서 그를 승리로 이끌어 줄만한 조직적인 대중세력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당분간 옐친대통령은 자신의 명성과 권위를 무기로 새로 구성될 의회에서 다수파가 되기위해 총선승리에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내 각 지방의 상황도 주의를 요한다. 사실상 각 지방의 행정계통 지도자들은 옐친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지방 소비예트(지방의회)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옐친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면서 의회를 해산한 포고령에 반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관망하는 자세가 지방의 현실이었다.
물론 찬성과 반대의 수적인 우열만 가지고 지방의 실제적인 역학관계를 반영할 수는 없다. 첼랴빈스크나 트란스바이칼리아 그리고 극동같은 지방은 그곳에서 전개되는 상황이 옐친의 의도와 충돌할경우 러시아 정국이 전체적인 파국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옐친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곧바로 하스불라토프최고회의의장이나 루츠코이부통령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의회선거와 대통령선거의 동시실시를 옹호했던 지방이 있었는가 하면 볼가강유역의 자치공화국인 타타르스탄 같은 곳에서는 모스크바에서의 정치적 투쟁을 그저 지켜볼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현재 러시아연방내의 여러 지역이 중앙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위해 독자노선 또는 독립을 추구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 스타일의 「반자치지역」으로부터 완전자치를 추구하거나 이를위해 전통적인 중앙과의 결속관계로부터 이탈하려는 움직임이다. 물론 이러한 지역들이 개혁에 반대하는 「폭동세력」의 온상이 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것으로 보인다.
이번 러시아사태에 있어 특기할 만한 일은 이 사태에 대한 서방세계의 대응이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보리스 옐친대통령을 지지하는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것처럼 보인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지난 91년 군부보수파가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전대통령을 축출하기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미국이 보인 반응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클린턴대통령이 조지 부시전대통령과는 달리 주저하지 않고 지체없이 행동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에 있어 옐친대통령에 대한 서방과 동유럽국가 지도자들의 지지가 단순히 옐친에 대한 개인적 관계에서 비롯된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의 지지는 러시아의 혼란과 소요를 막기위한 바람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는 일시적인 정치적 필요에서라기보다는 러시아의 존립에 대한 전략적 필요가 우선적으로 고려됐다. 서방의 이해관계는 불가피하게 러시아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서방세계가 러시아의 정치투쟁에 대해 중립을 지켰다면 개혁을 추진하려는 쪽과 러시아를 과거의 족쇄에 묶어 두려는 세력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결과를 가져왔을것이다.
러시아는 이제 문명화된 방법을 통해 발전할 능력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고 법치국가의 전통을 확립해야 한다. 이는 옐친대통령이 무엇보다 먼저 달성해야할 과제이다.
이타르 타스 통신사도 이제 정상을 회복해 다시 뉴스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화를 촉발하는 세력들이 대부분 무력화되고 5명의 저격수들이 체포됐지만 아직 65명의 저격수들이 남아 있는것이 러시아의 현실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