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씨 40년 세월끝 완성/시대마다의 고난극복 의지담아/전쟁·독재거치며 말로 전하다 글로 탄생 예로부터 전해져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장산곶매의 이야기가 한 입심좋고 정열적인 이야기꾼에 의해 책으로 재탄생됐다.
백기완씨(통일문제연구소장)가 지은 「장산곶매 이야기」(우둥불간)는 그가 어린시절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골격을 바탕으로 오늘에 맞게 재창작한것이다.
그동안 장산곶매는 간혹 단편적인 이야기글로 정리된 적은 있지만 이야기의 전말이 온전하게 책으로 완성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산곶은 「사람도 못살고, 물새도 못살고, 풀나무도 못살고, 하없는 꿈도 못살고, 오로지 바람과 몰개(파도)와 죽엄과 빈 하늘만이 사는 막판」이다. 이곳에 사는 장산곶매는 「막판」을 딛고 하늘로 높이 솟아 오르는 민중들의 희망이다. 힘과 용기, 지혜와 덕성, 정의로움등을 갖춘 장산곶매는 힘없는 민중의 소망과 의지가 관철된 살아 있는 실체이다.
어느 시대건 그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장산곶매이야기는 우리의 대표적인 민중전설이라 할 수 있다.
백기완씨가 이 책을 만들기까지는 거의 40년이 걸린 셈이다. 그는 54년 명동의 술집과 거리에서 장산곶매의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는 참혹한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힘찬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 망한 우리 이야기가 다 무엇이냐』는 조롱과 야유를 들어야 했다.
그는 3선개헌 반대투쟁을 벌이던 69년에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문화투쟁의 하나로 개최한 「형식문학 종언의 밤」에서는 입으로 이 이야기를 완성시키려 했지만 사정이 맞지 않았다.
그뒤로도 장산곶매 이야기는 그의 작품에서 짧은 이야기로 등장했다. 황석영씨가 소설 「장길산」서두에서 장산곶매의 전설을 소개해 장렬한 인상을 심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그는 『이야기꾼은 먹꾼(듣는 이)에 따라 이야기의 형식과 내용을 달리한다. 어릴 때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산곶매 이야기를 해준것은 일제의 압제를 갈라치기위해서였을것이다. 내가 60년대 이 이야기를 한것은 군사독재를 물리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가 지금 이 이야기를 완성해 책으로 남긴것도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아픔, 분단의 현실속에서 소시민화돼가는 민중의 모습, 진실이 허구화되고 상업화돼가는 세태등이 책만들기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장렬하게 펼쳐지는 장산곶매 이야기가 재미있다. 또 순수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쁨을 준다.【김철훈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