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운동서 림정까지 김구선생 행적 담아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 53세 때(1928) 집필한 「백범일지」는 전 생애에 걸친 행적과 선생이 온 몸으로 맞서 싸운 시대 상황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자서전이다.
「지은이의 말」과 「상·하권」, 우국충정이 글자 하나하나에 배어나는 「나의 소원」으로 엮어진 이 책은 선생의 어릴 적 얘기와 우여곡절 많은 젊은날, 숨막히는 선생의 독립 활동등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백범은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 백운당 텃골(기동)에서 빈농 김순영과 곽낙원(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살림으로 서당에 다닐 수 없었던 백범은 12세때에 이르러 사랑방을 서당으로 만들고 마을의 한 생원을 스승으로 삼아 한학을 깨친다.
17세의 나이로 우리나라 마지막 과거 임진경과에 응시하러 해주에 갔던 선생은 매관매직을 일삼는 당시의 부패한 과장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관리의 꿈을 내동댕이친다. 고향에서 풍수와 관상 공부에 몰두하던 선생은 해월 최시형을 만나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접주가 돼 혁명가의 기상을 처음으로 품게 된다.
어린 나이로 접주가 된 선생은 해주 죽산장에서 기병하여 7백명의 동학군을 이끌고 해주성을 습격하는 전적을 세우고 전투직후 동학군을 토벌하기 위해 일어난 진사 안태훈(안중근의 아버지)을 만나 친해진다.
안태훈의 집에서 만난 거유 고능선의 영향을 받아 압록강을 건넌 선생은 의병활동을 벌이고 귀국하는 길에 일본군 중위를 살해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선다.
귀국길에 오른 선생은 황해도 안악으로 내려오는 길에 치하포의 객주집에서 일본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 왜를 죽였노라, 해주 백운당 텃골 김창수」라고 쓴 포고문을 대담하게 길가 벽에 붙였던것이다.
이때부터 선생의 삶은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한것이었다.
세차례에 걸친 투옥과 탈옥, 그리고 감형,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거사, 한국독립당 조직과 한국광복군 창설 등 민족독립을 위해 활화산처럼 타오른 선생의 활동은 끝이 없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라고 대답할것이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라고 대답할것이다>
소원대로 해방된 땅에서 완전한 독립, 통일을 위해 북한 방문을 서슴지않던 선생은 1949년 6월26일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흉탄에 맞아 삶을 마감하게 된다.
한문으로 기록된 원본이 1947년 국사원에서 한글본으로 처음 출판된「백범일지」는 현재 범우사, 삼중당 문고등 20여 출판사에서 나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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