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의 대법원 감사에서는 사법부의 개혁문제가 단연 눈길을 끄는 주제였다. 문민정부들어 처음 열린 국정감사인데다 사법부의 수장이 재산공개파문과 관련해 교체된 직후여서 의원들의 질문은 사법부의 변화여부에 집중됐다. 야당의원들은 그동안 꾸준히 주장해온 이른바 「정치판사」의 퇴진, 즉 인적개혁을 강도높게 요구했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소신판결의 분위기형성등도 이날 의원들의 주된 표적이었다. 사법부로서는 삼권분립의 다른 한 축인 입법부의 질책이 귀에 거슬렸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개혁을 다짐하고있는 시점인만큼 정치권의 지적을 일단 수용하는 모습이었다.
의원들은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기위해 과거의 굴절된 사법부모습을 다시 투영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법조인이기도 한 법사위 의원들은 사법부의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그들 나름대로의 애정을 담으려 애쓰기도 했다.
국회부의장인 허경만의원(민주)은 이날 오랜만에 무거운 입을 열었다. 허의원은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아무리 아프더라도 인적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문을 연뒤 『정치권에 깊이 개입됐던 법관은 스스로 사퇴하는것이 바람직하다』며 사법부의 환골탈태를 촉구했다.
이어 의원들의 개혁주장 수위는 점차 높아져갔다. 강수림의원(민주)은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는 일제침략기 식민지 정책의 도구로 이식된 일본의 사법제도를 그대로 답습한것』이라고 역사적 근원부터 따져나갔다. 강의원은 『유신이후 사법부는 독재정권을 수호하는데 기여했으며 그런 역할은 5·6공때도 계속됐다』고 주장한뒤 『사법부의 개혁은 과거 독재세력과 협력했던 정치판사들을 퇴진시키고 양심적인 판사들이 고위직에 자리잡도록 하는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의원은 정치적 판결의 대표적사례로 부천서성고문사건, 유성환의원 국시논쟁사건, 유서대필사건, 안기부원 흑색유인물 사건등을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이원형·강철선의원(민주)은 『법관재임용제는 법관이 소신있는 판결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제도』라며 『헌법사항이라 당장 폐지하기 어렵다면 운영의 묘를 살려 사실상 폐지된것과 같이 해야할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의원은 특히 『법원이 주로 자백을 근거로 한 안기부의 구속영장청구에 대해 1백% 발부하는것은 외부압력때문이 아닌가』라며 『인신구속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유수호의원(국민)은 초대 대법원장이었던 김병로선생의 예를 들어가며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과 통치권자로부터의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당의 박철언의원 재판을 의식한듯 유의원은 『소위 정치적 사건에서 사법부의 절개가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의원들도 다소 강도는 떨어지지만 사법부의 개혁에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정상천의원(민자)은 『 예산편성권이나 법률제안권만이 확보된다고 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고 지적한 뒤 『인적구성원들의 변화와 의식개혁이 선결돼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박희태의원(민자)도 『대법관들이 양질의 판결을 하기 위해서는 1년에 1천여건에 달하는 과중한 업무를 덜어주어야 한다』면서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의원들의 질타에 앞서 윤대법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사법부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야 한다는것은 역사의 명령』이라며 『사법부의 개혁작업은 사법부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없는 만큼 의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한다』고 입법부의 협력을 정중히 요청했다.
최종영신임법원행정처장도 『과거 어느 법관이 특정사건을 맡았다는것만으로 「정치판사」라고 재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법관 퇴진문제는 법관 스스로의 양심과 자율의 문제이며 슬기롭게 해결되리라고 본다』고 말해 사법부의 개혁이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임을 솔직히 인정했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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