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회에서 몸이 아프면 이름난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탕제를 짓거나 환약을 구해서 병을 다스렸다.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이 애써서 쌓은 의술은 개인의 독점물이 아니었다.
의술이 인술이란 말은 의원들이 지나친 약값이나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술을 펴는 의원은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유생들도 의서를 읽어 집안과 이웃에서 병이 난 사람을 고쳐주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길을 가다가도 풀숲에서 좋은 약재가 눈에 뛰면 거두어 잘 말린 후 봉지에 싸서 벽에 묶어 뒀다. 사랑방의 고서 속에서 흘러나오는 약내음은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는 인술의 향내였다.
서랍이 빽빽한 이 장은 18세기께 조선의 어느 의원이 다양한 약재를 넣어두던 약장이다. 옛 약장들은 모양과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반닫이 미닫이 문갑식이 있는가 하면 단층식 이층식 회전식이 있고 또 고급 재목으로 짠 왕실용과 관가용 그리고 소나무처럼 흔한 나무로 만든 서민용도 있다. 약을 담는 서랍은 적은것이 20여개이고 많은것은 2백개나 된다.
받침다리가 밖으로 뻗쳤다가 가만히 안으로 접혀들어 괴게 한것에서 이 약장을 만든 장인의 미적 감각이 드러난다. 높이 1백32㎝, 가로 80㎝, 세로 25㎝. 한독의약박물관 소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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