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일해온 국립박물관을 퇴직한 이난영씨/57년 학예직으로 인연… 산증인/유물 20여만점 색인작업·저서도 7권 우리나라 첫 여성 국립박물관장이었던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이란영씨(59)가 대학 강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에서 지난달 30일 퇴임한 그의 재직 경력은 37년. 국립박물관 역사의 산 증인이다.
57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직으로 들어온 후 우리나라 첫 여성 박물관 학예관, 고분 발굴에 참여한 여자 1호, 여성 국립박물관장 1호였던 그는 특히 20여만점에 달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을 정리해 색인을 만든 엄청난 작업을 한 사람이다. 그는 이번 학기부터는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물관학· 공예사· 미술사 강의를 맡는다.
이난영씨는 그가 오래 살아온 친정인 국립중앙박물관이 구총독부건물로서 철거결정이 나 괜시리 부산한 마음으로 박물관 생활을 마감한다고 말한다.
『유물을 평생 관리해온 입장으로서는 유물보존도 총독부건물의 철거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은 새로 지방박물관이 개관될 때마다 인원을 보내서 줄어들고 있는데도 사람 충원이 되지 않아 매우 어렵습니다. 유물 구입비도 1억여원으로 너무 적어서 박물관이 제 역할을 하기가 몹시 힘들지요.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능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총독부건물 철거와 박물관의 이전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쐐기」란 별명이 나타내 주듯 좋고 싫은 낯가림이 분명하고 성격이 깐깐해 박물관 살림을 야물차게 꾸며온 그는 학구적이기도 해서 「박물관학 입문」 「신라의 토우」 「한국의 동경」 「한국금속문 추보」「한국고대 금속공예연구」등 7권의 저서를 냈다.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높은 식견을 인정받아 91년 단국대에서「한국 고대 금속공예 연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경남 산청이 고향으로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서울대 사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고학 강의가 흥미를 끌어 박물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학예관으로 발굴현장에 처음 나갔을 때 당시 신문들은 바지입은 사진과 함께 「무덤파는 여자 1호, 그래서 결혼도 못한 독신 여성」이란 화제성의 짓。은 기사를 실었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박물관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원박사의 권유에 따라서다. 당시 숙박시설도 좋지 않고 체력도 달려 발굴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바에는 박물관학을 연구하는 것이 낫다는 스승의 지도였다. 그는 69년 일본 닛교(립교)대 하와이대로 유학,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박물관학을 공부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과장, 미술부장을 거쳐 국립경주박물관장직을 끝으로 박물관 생활을 마치는 그는『앞으로도 많은 여성이 박물관으로 들어와 이 분야의 연구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최성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